‘푸러리’ 이야기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12)

‘푸러리’ 이야기

- <성서 개역의 필요와 목표> 1938년 7월 -

 

‘푸러리’는 김교신이 키우던 개 이름이다. <성서 개역의 필요와 목표>라는 사뭇 진지한 글 제목과는 상관없어 보이는 개 ‘푸러리’! 하지만 ‘푸러리’는 이 글이 있게 한 핵심‘견’물이다. 빈틈없고 매사 엄격하던 김교신이 동물들에 대해 이렇게 속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그의 일기를 읽다보면 나라 걱정, 교회 근심, 가족 이야기와 더불어 기르던 가축들의 소소한 이야기도 종종 등장한다. 이 글을 쓰던 즈음의 일기에는 짧은 한 줄이라도 ‘푸러리’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었다. “나간 개가 오늘까지 소식이 없다.”(6월 22일자) “오늘까지도 소식이 없으면 ‘푸러리’ 돌아오는 것을 단념하는 수밖에 없다.”(6월 23일자) 그러나 ‘단념’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으며 그는 내심 불편했던 것 같다.

 

불량배들이 때려 먹은 것인가 하고 분해하기도 하였으며 혹은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을 잃고 방황하는 중인가 해서 식구 총동원으로 떼를 지어 돈암정 성북정 동소문 일대까지 뒤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하루 가고 이틀 가고 사흘, 나흘 가도 돌아오지 않으니 이제는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마음은 그만 단념하라는 폭력에 눌리는 형세가 현저하였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소식이 분명치 않은 생명을 향해 ‘단념’이라는 마음이 드는 것 자체를 ‘폭력’이라고 표현하며 김교신은 마음이 괴로웠다. 원산에 사는 지인에게서 얻어온 강아지였고 데려오는 과정에서 이편저편 수고해준 이들이 많아 볼 때마다 그들의 사랑과 정성이 함께 느껴지던 특별한 존재였다. 아이들 학교 가는 길 전송하는 살가움이 있었던 사랑스런 개였다. 다만 ‘잃고’ 보니 그동안 가장으로서 자신이 ‘푸러리’에게 너무 엄했던 것이 아닌가, 반성을 하게 되었다. “겨울에 춥다고 부엌에 들어올 때나 비 온 날 질다고 마루에 올라올 때에 처벌하는 역할”을 도맡아 했던 것도 후회되었다. 하여 식구가 모이면 언제나 ‘푸러리’ 이야기였고, 집밖으로 나가게 되면 자전거를 타면서도 혹시나 싶어 여기저기로 눈길을 돌리며 살았다 한다.

 

이렇게 한 지 5일 만에 아침 식탁이 벌어졌을 때에 제일 먼저 장남 정손이 벌떡 일어서면서 소리 질렀다. 저기 오는 것이 우리 ‘푸러리’ 아니냐고. 꿈 같이 부활같이 들리는 동안 온 식구의 시선은 푸러리 오는 편 약사사 쪽을 향하였다. 옳다, 옳다, 푸러리 살아온다! 푸러리! 푸러리! 가인(家人)들의 자태와 음성을 확인한 듯 푸러리는 네 굽을 안고 뛰어 들어오지 않는가! 우리는 노소 모두 숟갈을 던지고 대문 쪽을 향하여 내달았다. 눈에 눈물 고인 푸러리는 무수히 뛰어오르며 핥으며 짖으며 이 아이에게 쓸어 보며 저 어른 앞에서 굴러 보는 등 실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의 장면이었다.

 

 

 

 

무미건조하기가 ‘모래밥보다 더하다’고 스스로 표현할 만큼 차분하고 단순한 주일예배를 드리고, 성서를 읽을 때에도 ‘냉수를 쳐 가며 열을 식혀’ 읽으라고 권하던 사람, 이성적이고 냉철한 신앙인이었던 김교신에게 이런 면이 있었던가! 얼마나 기뻤으면 푸러리에게 늘 엄격하게 대했던 그마저도 애정을 표현하던 아침에, 문득 김교신의 머리에 함께 연상되는 생각들이 있었다.

 

이 광경 중에 전광같이 연상되는 것은 ‘다시 만나 볼 동안…’이라는 찬송가와 부활하여 사랑하는 자와의 대면, 99수(首)의 양을 두고 한 마리마저 찾은 목자의 기쁨, 탕자의 귀환을 본 어버이의 환희, 배교(背敎) 청년의 회개를 본 교사의 만족 등등이었다. 이러한 사상을 배경에 두고 잃었던 개 돌아온 기쁨을 문자로 기록하려면 우선 그 제목을 무엇이라고 할꼬 하면서 생각하였다.

 

역시 김교신이구나, 이 장면에서도 결국은 성서로 돌아오는구나! 그러나 이 무렵 김교신은 우리말로 번역된 성서 구절들이 원문의 깊이와 절절함을 정확하면서도 전달력 있는 한국어로 표현하고 있지 못함을 한탄하던 중이었다. 자고로 언어에는 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서가 온전히 담겨있는 법이니, 두 번이나 제한된 언어를 다시 살려내는 중차대한 필요와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일단은 직접 경험한 그 감격을 언어로 표현하자니 제한이 따를 수밖에 없다. 푸러리 돌아온 기쁨을 문자로 기록하고자 “다시 만난 기쁨”이라고 적으려 했더니 푸러리 돌아오던 그 아침의 감격을 전달하기에는 영 싱겁고 심심하다. “재회의 환희”라고 표현하니 한글도 한문도 아닌 ‘한어적 국어’인지라 마음이 내키지를 않는다. 그러다가 문예에 조예가 깊은 지인과의 대화 가운데 “아이 반가워라!”라는 답을 얻고서 김교신은 뛸 듯이 기뻐했다. 이렇게 쉬운 우리말을 두고서, 이렇게 절절하게 전해지는 기쁨의 표현을 두고서, “다시 만난 기쁨”이라니! “재회의 환희”라니!

 

수천 년 전 유대인들이 생생하게 경험한 해방과 구원의 기쁨을 언어로 표현하자 하니 일차적인 제한이 따랐을 일이다. 거기에다 유대인이면 공감했을 정서가 담긴 문자들을 우리말로 번역하고자 하니 ‘출발어’(히브리어/헬라어)와 ‘도착어’(한국어) 사이의 간격으로 인해 또 한 번의 제한이 따라오는 것이 당연하다. 거기에 김교신 당시의 한국어 번역본은 한문본과 일어본을 거친 국문역이었던 지라, 원어로 성서를 읽으며 공부하던 그로써는 얼마나 안타까움이 컸을지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이렇게 바라볼 때에 우리의 개역의 대원(大願)을 성취함에는 아직도 전도요원하다. 오늘날까지 외국어를 공부했대야 그것도 명색뿐으로 하나 완성한 것이 없는데 고약한 습관만 붙어서 문(文)만 보면 격(格)이니, 시(時)니, 수(數)니 하여 분해하고 조합해 보아도 그것만으로는 산 것이 나오지 않는다. 이제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평이하고 순수한 우리말이다. ‘아이 반가워라’ 같은 말이 손쉽게 튀어나오는 날에라야 개역의 일이 가망 있다.

 

물론 김교신의 시절과 비교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원어에 훨씬 충실한 국역본이나 현대인의 언어적 표현을 반영한 쉬운 우리말 성경에 이르기까지 성서 번역에 있어서는 큰 성취를 이루었다. 그러나 살아 있는 언어, 정확한 언어, 쉬운 언어로 ‘하나님 만난 감격의 경험’들을 전달하자는 김교신의 당부는 비단 성서 번역에만 제한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모국어에 능한 사람들끼리는 굳이 ‘번역’이 필요 없는 법이다. 모국어는 본디 내부자들의 언어인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번역’의 작업을 수행한다면 우리가 숙지해야하는 언어들은 무엇이어야 할까?

 

복음의 내용을 전달하면 분명 똑같은 한국말임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많다고들 한다. 그럴 일이다. 수천 년 전 팔레스타인 땅의 언어와 문화적 풍습을 21세기 한국 땅에서 ‘직역’하여 말하면, 성서에 담긴 그 생생한 복음의 감격이 고스란히 전해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희생양이 되어 돌아가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 피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 사함을 입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도대체 ‘속죄를 위한 희생제물’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속죄제를 드릴 필요성에 대한 문화적 이해가 없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우리말’은 얼마나 생생하게, 얼마나 쉽게, 얼마나 정확하게 구원의 감격을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러니 이런 언어들을 접하며 오늘의 젊은이들이 ‘외국어’를 넘어 ‘외계어’라며 도리질을 할 일이지….

 

기독교 내부자로서 우리는 형식적 제의종교와 율법주의의 정점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와 그의 ‘피흘림’이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지 잘 알고 있다. 그건 우리의 ‘모국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1세기 사람들도, 유대인도 아닌 오늘의 사람들에게 이 언어를 그대로 ‘번역’없이 전달한다는 것은 한국인에게 히브리어 성서를 들이미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일이다. 김교신은 좋은 성서번역을 위하여 “복음을 이해한 믿음” “성서 원문 및 [여러 나라 국어 번역본]을 참고할 만한 외국어학” 그리고 “무르녹는 우리말”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한 사람이 이 셋을 다 가지고 있을 수 없다면 협력하여서라도 제대로 번역하자고 말이다.

 

이 협력은 오늘날에도 절실하다. 푸러리가 살아 돌아 온 날의 그 기쁨처럼, 성서 안에 담긴 구원 경험을 생생하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감격, 이를 자기 문화 안에서 ‘읽히도록’ 번역해온 사람들의 전례, 그리고 오늘날 우리 정서와 문화적 언어로 같은 메시지를 ‘번역’하여 전달하는 과제, 이 ‘개역’의 과제는 김교신 시절만이 아니라 우리 시절에도 절실하다. 어쩌면 더 절실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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