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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얘기마을

규성이 엄마

by 한종호 2020. 9. 8.

한희철의 얘기마을(78)


규성이 엄마


작실에서 내려오는 첫차 버스에 규성이가 탔습니다. 엄마 품에 안긴 어린 규성이의 두 눈이 빨갛게 충혈 되어 있었습니다. 감기가 심해 원주 병원에 나가는 길이었습니다.


엊그제 들에 나가 고추며 참깨를 심었는데, 점심을 들에서 했다고 합니다. 솥을 돌 위에 걸고 나무를 때서 밥을 짓고 국을 끓인 것이지요. 먼 들판까지 점심을 이어 나르기 힘든 것도 이유였겠지만, 시어머니며 남편이며 몇 명의 품꾼이며, 어쩜 일하시는 분들께 따뜻한 점심을 차리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새댁인 규성이 엄마가 점심을 차리는 동안 어린 규성이는 밭둑 위에서 혼자 버둥거리며 누워 있어야 했는데 흐리고 찬 날씨, 감기가 되게 걸린 것입니다. 어린 규성이가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어린 아들 측은히 안고 가는 엄마의 아픔이 내겐 더 컸습니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라 농촌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선한 이웃 청년과 자신의 삶을 합하고, 맏며느리로서 적지 않은 살림 구김 없이 꾸리는 규성이 엄마. 어린 자식 감기 걸린 게 못난 자기 탓이라는, 제발 그런 생각은 말았으면, 규성이 엄마를 바라보며 사정하듯 마음속으로 빌고 빌었습니다. 


-<얘기마을>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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