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마스크와 침묵

by 한종호 2020. 8. 24.

신동숙의 글밭(218)


마스크와 침묵


요즘 우리 사회를 어지럽히는 진짜 바이러스는 코로나19가 아니라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제 뉴스에선 확진자 수십명이 다녀간 어느 가게에서 검사를 받은 직원들한테서 모두 음성 판정이 나왔다고 한다. 그럴 수 있었던 요인은 모두가 코로나19 안전 수칙인 마스크 착용을 잘 지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천지 사태 이후로 온 국민이 정부에서 알려준 코로나19 안전 수칙을 대부분 잘 지켜왔기에 울산 지역만 해도 최근 100일 동안 확인자가 0명이기도 했었다. 그리고 어제 날짜로 확진자 70명이 되었다.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공공 기관 출입시에 발열 체크 등. 이 수칙들이 처음엔 약간의 불편함을 주었지만, 어느새 그것도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되면서, 이제는 익숙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감사한 점은 이 규칙을 지키는 선 안에서 그동안 비교적 자유로이 평범한 일상 생활을 누려올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이 오늘날에 이어져 '코로나19 안전 수칙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는 의미로까지 읽히는 것이다.

 

지금껏 코로나19 안전 수칙 준수 안에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함께 식당에서 즐겁게 식사를 할 수도 있었고, 카페에서 벗을 만나서 커피와 차를 즐길 수도 있었고, 산을 찾아서 시원한 계곡물에 발을 담글 수도 있었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서점을 자녀들과 둘러볼 수도 있었고, 지난주에는 도서관에 앉아서 책을 읽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8.15 광복절 날에는 더위를 많이 타는 우리 아들이 구룡포 해수욕장에 풍덩 몸을 담그고 한껏 해수욕을 즐길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2020. 8.15 전까지의 코로나19 안전 수칙 안에서 누릴 수 있었던 자유였다. 하지만 광복의 기쁨을 다시금 맞이 하자는 의미인 광복절날 나라안은 다시금 혼돈 속으로 빠지고 말았다. 하늘 나라에 계실 독립운동가들이 보고서 통탄해 할 현 대한민국의 모습이 광화문에서 펼쳐진 것이다. "내가 저 꼴을 보려고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나와 가족의 목숨까지 받쳤나!" 그날이 코로나19 재확산의 시발점이 되기는 했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원인은 코로나19가 아니다. 혼돈과 어지러움의 원인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사회적인 상식선과 코로나19 안전 수칙과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를 완전히 무시한 정치와 종교 지도층의 말이 그 원인이다. 그래 놓고는 혼돈을 주동했던 정치는 벌써 발을 빼려고 한다. 무책임하고 무지한 정치인의 모습을 국민들은 이렇게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책임과 시시비비는 차후에 있을 투표에서 행사할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언론은 어리석은 종교인만을 내세운다. 전** 목사는 딱 보기에도 참 어리석게 생긴 사람이다. 정치와 대중과 헌금에 부화뇌동하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나팔수로 보인다. 


그 나팔에서 나오는 가락은 아니리도 아니고, 궁상각치우도 아니고 도레미파솔라시도도 아니다. 그는 대중의 지휘자와 목회자의 신분을 내세우면서도 악보인 성경의 뜻도 읽을 수 없는 맹인이고, 예수는 안중에도 없다. 정치 권력과 탐욕과 대중의 환호와 헌금에 완전히 눈 먼 맹인이다. 보지 못하는 맹인이기에 그를 따르는 종교인들은 너무나 맹목적이고 맹신적인 종교인들이다. 곡조도 없는 음률에 맞추어 춤을 추려니 그들 대중도 미쳐갈 수밖에 없는 노릇일 것이다. 하늘의 소리도 땅의 소리도 아닌 것이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어리석은 목회자의 시끄러운 외침을 성령의 음성으로 착각했다면, 부디 돌이켜 고요한 가운데 저마다 자기 가슴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귀를 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성령은 이미 우리들 모두의 가슴에 이미 있는 양심이다. 자기 가슴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열고서 바른 길로 돌이키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이쯤 되면 사람의 말이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 더 심각한 테러가 된다. 국민을 바르게 지도해야 할 지도층인 정치 지도자와 종교 지도자의 말이 이처럼 세상을 어지럽히고 있지만, 우리에겐 더 강력한 방어력이 있는 것이다. 마스크와 침묵이다. 코로나 19 재확산 소식에 모든 일정들이 도미노처럼 줄줄이 취소 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고 있다. 사실상 아이들의 개학도 미지수다. 


그렇다면 다시금 처음처럼 하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정치와 종교 지도자가 어리석고 어지러운 말로 나라를 혼돈 속으로 흐트러뜨리고 있지만, 어둠과 혼돈을 깨끗하고 말끔하게 정리하는 것 또한 빛처럼 환한 침묵을 동반한 사람의 말일 것이다. 바른 말, 진실과 정의의 말, 따뜻한 말, 평화의 말, 사랑의 말, 하느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 예수가 마지막까지 우리들 가슴에 안겨 주신 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 마스크로 한 겹 걸러진 침묵의 말. 마스크의 답답함이 오히려 고요함이 되는 침묵 안에서, 정말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소리는 저마다 자기 가슴의 소리일 것이다. 


다시금 코로나19 재확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안전 수칙은 여전히 변함없을 것이고, 나와 가족들과 우리 모두의 안전을 지켜주리라는 든든한 믿음이 있다. 이미 지나온 경험으로 아는 것이다. 그리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마스크 착용과 손씻기, 사회적 거리두기, 정부에서 알려 주는 안전 수칙들을 끝까지 나와 이웃의 목숨처럼 지킬 것이다. 오늘날 우리들의 사랑법이다. 지난 7개월 간 나는 그 안전 수칙 안에서 얼마든지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정부를 신뢰한다. 믿음이 간다. 광화문 8.15 집회에서 등을 돌리고 선 정경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보며 울컥 했었다. 언제까지만 해도 정경들은 정부 명령에 따라서 그들도 어쩔 수 없이 곤봉을 높이 치켜 들고서 광장에 나온 국민들에게 대항해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대포에 실명이 된 국민도 있었다. 지금처럼 현 정부를 비난하는 아수라장을 등지고 서서 광장에 나온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정경들의 모습에서 이 정부가 국민을 대하는 기본 태도를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온갖 모욕을 참으면서도 국민의 기본권과 안전권을 지키려는 현 정부의 그 순전한 마음을 읽고 있는 것이다. 경제력의 부실은 다소 불편하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우주가 바라는 것 하느님이 우리 인간에게 끝까지 지키라고 내려준 천명은 재산이 아닌 마음인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잠언 4장 23절)


지금껏 현 정부의 지침에 따라서 마스크 착용과 사회적 거리두기를 엄격히 지키고 있는 모습이, 어제와 오늘 내 주변 이웃들의 흔한 모습이다. 모두들 이렇게 잘 하고 있는 것이다. 기다리고 고대하던 모임과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 되었다는 안타까운 연락을 전해 오고, 전해 받으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위해 건강과 평화를 빌어 주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그동안 잘 해왔고, 지금도 이렇게 잘 하고 있는 것이다. 


어지러운 혼돈의 강물을 함께 흘러가면서도 평화가 우리들 가슴 가장 밑바닥으로 이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변함없이 흐를 수 있는 것은 마스크 착용과 같이, 불순물을 한 겹 걸러주는 침묵 때문일 것이다. 말이 되지 않은 모든 의미들은 침묵이 되어서 우리들 가슴 가장 밑바닥으로 유유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불의를 위한 침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를 위한 침묵이며, 평화와 사랑의 침묵이다. 불의에 대해선 그러지 마라는 제소리를 낼 것이며, 정의와 평화와 사랑을 끝까지 지키려는 인내의 침묵이다.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의 틈바구니, 틈틈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향하여 조용히 귀를 기울일 수 있기를, 자기 자신의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샘물처럼 솟아오르는 한 오라기 평화와 기쁨의 물줄기를, 들려오는 사랑의 속삭임을, 고요한 침묵 속에 들려오는 천지창조 이전의 침묵이 전해주는 사랑과 평화의 이야기를 오늘 지금 이 순간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