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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나의 소로우 그리고 하나

by 한종호 2020. 7. 26.

신동숙의 글밭(198)


나의 소로우 그리고 하나


눈을 감으면 바로 눈 앞으로 펼쳐지는 유년의 풍경이 있어요. 제가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낸 부산의 서대신동 산동네입니다. 지금은 신평으로 이전한 예전의 동아고등학교가 있던 자리 바로 뒷동네입니다.


제가 살던 집 옆으로는 아침밥만 먹으면 숟가락을 놓자마자 달려가던 작은 모래 놀이터가 있었는데, 무쇠로 만든 4인용 그네는 언제나 선택 1순위였어요. 흔들흔들 왔다갔다 어지러워지면 땅으로 내려와서 그 다음으로 미끄럼틀을 타고, 시소와 지구본까지 골고루 돌면서 한번씩 타곤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겨워지면 모래땅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던 놀이 기구인 지구본의 이름이 제가 제일 처음 들었던 지구의 이름이예요. 누군가가 장난 삼아 세차게 돌리면 어지럽고 무서워서 멈춰 달라며 목소리를 내던 그 지구본. 지구는 둥글고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이구나. 신기한 사실은 사람이 만든 지구본은 그렇게 어지러웠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지구는 어지럽지 않다는 사실이예요. 그리고 멈춤도 없고, 거꾸로 도는 법도 없이 한결같은 걸음이 참으로 성실하지요.


동네 언니, 오빠들이 하나 둘 모이면 그 중에 어느 누군가가 엄지 손가락 하나를 하늘로 세웁니다. "잡기 놀이 할 사람 요요 다 붙어라." 잡기놀이, 술래잡기, 땅 따먹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그 시절 아이들의 놀이는 모두가 흥얼거리는 노래였고, 하늘로 폴짝 뛰어 오르는 춤이었어요. 어린 저는 언제나 놀이에서 깍뚜기가 되곤 했는데, 언니들과 붙잡은 손을 놓칠세라 함께 졸졸 데리고 뛰던 깍뚜기는 술래가 일부러 잡지도 않고, 잡혀도 너그럽게 살려주던, 놀이에는 전혀 도움이 안되어도 혼자서는 마냥 행복한 꼴찌입니다.


한참을 놀다 보면, 어느덧 밥 먹을 끼니때가 돌아오고 함께 놀던 동무들이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면, 저는 언제나 혼자서 뒷산 바위산으로 오르곤 했어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무리를 떠나 홀로 산으로 가시더라.'의 예수의 뒷모습을 그려보게 됩니다. 그 호젓한 걸음이 쓸쓸하지만은 않았거든요.


아무도 저더러 산으로 가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같이 따라가 줄 친구도 하나 없었지만, 제 유년의 발걸음은 그렇게 혼자서 바위산으로 오르곤 했어요. 골목길을 돌아 좁다란 계단을 따라서 오르막 길을 걷다가 만나는 담장 아래에 핀 제비꽃, 달개비꽃, 토기풀, 강아지풀은 언제나 다정한 벗이었답니다.


산비탈을 깎아 계단식으로 만든 밭에는 배추와 무를 뽑은 자리에 장다리꽃이 피어 있고, 장다리꽃대를 꺾어 주룩주룩 껍질을 벗겨 씹어 먹으면 아삭아삭 달고 입안 가득 풋풋한 풀내음에 기분이 좋아지곤 했어요. 온종일 밖을 쏘다녀도 저녁까지 배고픈 줄도 모르던 자유로운 유년 시절입니다.   


바위산에 오르면 눈 앞으로 너른 하늘이 가득 펼쳐집니다. 아랫 마을은 발 밑으로 옹기종기 꽉 들어찬 풍경이 꼭 장난감 마을 같고, 저 멀리 지평선 끝으로 보이는 산마을 그 너머가 바로 미국인 줄 알던 유년의 세상은 그렇게 커다란 하늘이었습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미국을 떠올리면 제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 있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가 살았던 월든 숲입니다. 



법정 스님이 평생을 머리맡에 두고 보시며 사랑하셨던 소로우의 월든. 비폭력 평화를 꽃 피운 간디와 톨스토이가 깊이 감동한 소로우. 중 3이 된 딸아이에게 이야기 해 주고픈 소로우. 소로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제게는 친인척 같은 애틋한 마음이 듭니다. 


200년 전 미국 땅에 살면서 동양의 고전인 장자와 주역까지 읽었던 소로우에게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미 내면에 보편적으로 품고 있는 참자아와 석가의 불성과 예수의 온전한 마음과 진리의 성령과 보편적 양심을 봅니다. 월든 숲 속 오두막에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스스로 꾸리며 자연과 진리를 사랑한 소로우와 그의 간소한 살림살이에 깃든 하나의 의미를 되새김질 하다 보면 마음이 저절로 깊이 맑아지곤 합니다. 


월든 숲 오두막에서 소로우가 사용한 물건의 총 목록은 단순하기 그지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나무 침대 하나, 식탁 하나, 나무 책상 하나, 나무 의자 셋, 직경 8센티미터의 거울 하나, 부젖가락 한 벌, 장작 받침쇠 하나, 솥 하나, 나이프 두 개, 포크 두 개, 접시 세 개, 컵 하나, 스푼 하나, 기름병 하나, 단풍 시럽 단지 하나, 옻칠한 일본식 램프 하나'


하나, 하나... 그리고, 그의 둘레를 가득 채운 건 하나님입니다. "... 내가 매일 일기를 쓰는 이유는 하나님을 위해서다. 일기는 우편 요금 선불로 하나님께 매일 한 장씩 보내는 내 편지다. 난 하나님의 회계원이다. 밤마다 일일장부에서 원부로 그날의 계산을 옮겨 적는다.


일기는 머리 위에 매달린 길가의 나뭇잎이기도 하다. 가지를 붙잡아 잎 위에 내 기도를 적는다. 그러고 나서 가지를 놓아준다. 가지는 제 자리로 돌아가 잎에 적힌 낙서를 하늘에 보여준다. 일기를 내 책상에 고이 간직해두지 않는다면 나뭇잎과 마찬가지로 만인의 것일 수 있다. ..." (1841년 2월 8일 (24세) - 소로우의 일기 中)


산동네 재개발로 빽빽히 들어선 고층 아파트가 바위산보다 높이 솟아 이제는 제 어릴적 고향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 어린 가슴으로 펼쳐지던 너른 하늘은 그대로 제 가슴 속에 살아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동서고금 별처럼 빛나는 이들이 영혼의 고향 같습니다. 


자연과 진리를 사랑하며 단순함과 간소함으로 맑은 가난을 아름답게 꾸려가던 지구별 산책가 소로우의 삶은 쉼 없이 흘러 오늘날의 한국 땅, 낮아진 제 가슴으로 물길을 내었습니다. 그리고 샘물처럼 맑은 사랑은 스스로 낮아진 가슴으로 흘러갑니다. 이 순간에도 지구별 어디선가 저처럼 소로우를 그리워하는 소박한 마음의 친인척을 떠올리다 보면 별 하나를 품는 듯 행복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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