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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ㅡ 나무 선생님 편

by 한종호 2020. 7. 22.

신동숙의 글밭(195)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ㅡ 나무 선생님 편





어둑해 지는 저녁답, 집으로 가는 골목길 한 모퉁이에는 아주 작은 나무 공방이 하나 있습니다. 저 멀리서 보아 유리창 안으로 작고 노란 전깃불이 켜져 있는 걸 볼 때면, 어둔 밤하늘에 뜬 달을 본 듯 반가워 쓸쓸히 걷던 골목길이 잠시나마 푸근해져 오곤 합니다.


잠시 들러 몇 마디 얘기를 나누다가, 나무 선생님이 문득 "저를 위한 시 한 편 적어 주세요." 그러면서 나무에 글씨가 써진다는 도구와 나무 토막을 선뜻 내미시는 것입니다. 집에 가져가서 연습용으로 사용하라시며, 시와 글을 적는 저에게 유용할 것 같다시며 맡기듯이 안겨 주십니다. 저로선 난생 처음 보는 도구입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물었습니다.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세요?" 그렇게 해서 나무 선생님의 입술에서 넋두리처럼 새어 나오는 가슴 속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는 앞뒤가 없이 곧바로 흘러나옵니다. "태풍 그치고 강변에 나갔는데 파도가 막 치는 거예요. 그런데 소리가 없어요."


끙끙 앓는 자의 신음 소리처럼 나무 선생님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가 이어집니다. "말 하면 무얼 내 가슴에 파도가 치는데 소리가 없어요..."


저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가, 제 가슴에 비치는 단어를 찾는 사이에, 나무 선생님은 강아지를 어깨에 안고서 이층집으로 달려 올라가십니다.


인장이 찍힌 나무판 세 개를 더 주시면서 연습용으로 집에서 글씨를 써 보시고, 평소 좋아하시는 유창목 토막에 적어 달라 하십니다. 그때 문득 제목이 스치듯 떠오릅니다.


"들숨"


제 입이 제목을 뱉어냈더니, 소스라치게 놀라십니다..

"제가 두 달 전에 숨을 못 쉬어서.. 응급실에 실려갔던 얘기를 했던가요?" 


들숨

..


말 하면 무얼

내 가슴

소리 없는

파도


그렇게 저는 나무 선생님의 입말을 그대로 받아쓰기를 하였습니다. 누구라도 가슴에 오랜동안 맴도는 말이 있다면, 그 말을 그대로 받아쓰기하면 그대로 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사람들의 입말들이 시로 들린다고 했더니,

나무 선생님은 나무 작품이 떠오른다 하십니다.


평소에 제 시 속에서 들숨과 날숨은 종종 쓰이는데, 늘 짝으로 함께 쓰는 시어 중 하나입니다. 둘 중 하나만 떼어서 쓰기는 처음인 것입니다.


저는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배웅을 하러 따라나오시며 선생님이, 필요한 연습용 나무는 얼마든지 드릴테니 많이 적으라는 다짐의 말까지 하십니다. 물길처럼 흐르는 마음을 저에게로 내어주심에 저는 감사할 뿐입니다.


나무 선생님의 삶 가운데 들숨과 날숨이 평온한 속도로 조화롭게 살아가기를 기도 드리며, 전날 지나간 태풍으로 유난히 말갛게 갠 밤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남쪽 하늘가 별 하나가 유난히 깨끗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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