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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by 한종호 2020. 4. 8.

신동숙의 글밭(127)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언젠부터인가 저의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 생겼어요. 일어나서, 씻고, 먹고, 비우고, 만나고, 일을 하고, 산책을 하고,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놀고, 글을 쓰고, 잠을 자고, 꿈을 꾸는 등 어느 것 하나 우리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시간이 없지만요. 


그래도 이 시간을 위해서 먹고, 이 시간을 위해서 읽으며, 이 시간을 바라보고 그리워하면서 어느덧 이 시간은 저의 하루가 품은 소중한 알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처럼 중요하고 소중한 시간은,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입니다. 


이제는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좋겠지만, 짧더래도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요. 윤동주 시인의 다 헤아리지 못하는 별처럼, 다 헤아릴 수 없는 봄날의 꽃잎처럼 그저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시간 속의 시간이 될 수 있어요.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속의 시간'을 가지려고 하루에도 틈틈이 가만히 앉아 있으려 합니다. 주위로부터 가까운 기계음과 말소리는 되도록이면 멀리하고, 새소리와 물소리는 가까이 있으면 좋겠지만, 여건이 조금 부족하고 아쉽더래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도심 속이라 해도 조용한 실내 공간이 있다면 충분합니다. 


그동안 제겐 그런 장소가 아침마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선 후 조용해진 집이었습니다. 때론 차 안이 되기도 합니다. 맑은 숨을 쉬어야 하니까 창문을 살짝 열어 놓아요. 그리고 허리를 조금 세우고 두 손은 가만히 모아서 내려놓은 후 몸에 힘을 빼고 편안하게 앉아 있어요. 호흡을 편안하게 숨결을 고르다 보면 몸도 한결 편안해지고 부드러워집니다.


볕이 좋은 아침에는 거실 마루에 투명한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햇살에 등을 쬐며 앉아 있곤 합니다. 따뜻한 햇살이 온몸을 둥글게 감싸면 뼛속까지 따뜻해집니다. 그대로 마음이 녹아서 흘러요. 어둔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 뭉쳐 있었는지도 몰랐던, 보이지 않는 모르는 그 무언가가 얼음이 녹는 듯 녹아서 풀리기도 합니다.




요즘은 아이들이 학교를 못 가서 모두 집에 있다 보니 조용할 틈이 없답니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집을 나왔습니다. 대문 옆 돌담 옆으로 주차한 차 안에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그대로 차를 몰아서 한적한 나무 아래를 찾아서 시골길이든 산길로든 가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까, 아무렴 홀로 있는 곳이면 그저 차 안이라도 좋습니다. 저 멀리 집 안에선 티비 소리와 아들의 웃음 소리가 담을 넘습니다.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이 누군가에겐 기도의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무언가를 간구하는 기도가 아닌 침묵의 기도예요.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이니까요. 몸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아무거도 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단지 숨을 고른답니다. 그저 숨만 편안하게 쉬려는 한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숨이 거칠어지면 몸이 가만 앉아 있지 못하니까요. 숨이 들뜨면 몸도 마음도 들뜨니까요. 시간이 흐를 수록 채우려 하기보다 비우려는 고요와 침묵의 기도가 됩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힘을 빼면서 몸 어딘가에 뭉쳐 있는 근육과 긴장을 하나씩 풀고 또 풉니다. 들뜨는 마음을 내려놓고 또 내려놓습니다. 숨을 쉴 때마다 일어나는 마음과 생각을 물결처럼 흘려 보냅니다. 흐르는 물을 멈출 수 없는 것처럼 마음도 생각도 멈출 수는 없기에 단지 바라보면서 흐르게 할 뿐입니다. 그렇게 고요히 바라보다 보면 몸의 감각과 마음과 의식이 점점 맑아집니다. 


숨줄은 몸을 가만히 한 자리에 앉혀 두는 좋은 줄이 됩니다.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게 호흡을 고르다 보면 숨을 따라서 그리움이 흐릅니다. 어쩌면 제 그리움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보이지 않는 어느 한 점이, 이 세상 첫 마음이, 지금까지 한시도 제 그리움을 놓아준 적이 없으니까요. 영혼의 탯줄인 듯 그리움의 줄은 놓여난 적이 없으니까요.


예전에는 잠자는 시간과 놀이 시간 정도가 휴식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몸은 누워서 잠을 자고 있지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꿈자리가 사납다는 말을 듣거나 제 자신이 얘기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땐 잠자는 시간도 때론 온전한 휴식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와 뉴스의 강물 위에 둥둥 작은배를 띄운 후 머무는 고요한 시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오늘을 살아낸 후 잠을 자고 내일을 새롭게 시작하던 자연스러운 일이, 언젠부턴가 둥근 해와 달의 흐름처럼 매끄럽게 굴러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딘가 막히고 어딘가 매이고 마음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몸도 무거워지고 그보다 마음이 더 무거워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치유책으로 혼자서 공상 과학 영화 같은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캡슐 같은 통에 들어가서 가만히 누워 있으면, 몸도 마음도 정신도 재생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런 허무맹랑한 바램이 길을 보여준 것일까요. 어쩌면 몸과 마음과 정신까지 재생시키는 캡슐 안에 누워 있는 일이 문득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하고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루가 품은 소중한 알처럼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동안에, 저는 가슴으로 아름다운 마음의 얼굴 하나를 해처럼 별처럼 떠올립니다. 


아름다운 마음의 예수를 품습니다. 또는 예수를 따르는 이의 고운 얼굴을 품습니다. 그러면 춥고 어둡던 방에 촛불을 켠 듯 따뜻해지고 환한 사랑으로 충만해집니다. 때론 그 따뜻한 사랑에 눈물이 샘물처럼 차오르기도 합니다. 비로소 제 영혼이 온전한 쉼을 얻는 에덴 동산의 안식을 누리는 고요한 사랑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재생된 몸과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하루를 살아가려 합니다. 


오늘 밤에도 부활하신 예수가 베드로에게 물었던 첫 말씀이 별처럼 빛납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저에게 예수는 구원보다는 사랑입니다. 아무거도 하지 않는 시간, 홀로 고요한 침묵의 시간, 관상의 기도 시간 동안, 온전한 진리와 사랑이신 예수를 제 가난한 가슴에 씨앗처럼 품다 보면, 제 마음에도 사랑이 꽃처럼 피어날 수 있을까요. 이렇게 봄이 오면 저절로 피어나는 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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