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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한 사람이 모두가 되기까지

by 한종호 2020. 3. 17.

신동숙의 글밭(112)

 

한 사람이 모두가 되기까지

이 사회에서 제 자신의 가치를 화폐만으로 환산하려는 일이, 이제 저에겐 시대에 뒤떨어진 진부한 일이 됩니다. 스스로를 겸손함으로 붙들어 메두려함도 아니요. 교만함으로 떠벌리듯 자랑하려함도 아닙니다. 비록 걸친 옷은 촌스럽지만, 가치 의식 만큼은 최첨단 기술을 추구하니까요. 시대의 한 사람으로 살아가면서, 거듭 제 자신을 비추어봅니다. 자연과 지성의 거울들과 역사와 스스로의 양심에 비추고 또 비추어 하늘을 보듯 늘 바라보려 합니다.

 

이미 스스로의 가치를 화폐만으로 환산하지 않으며,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시는 분들을 많이도 보아오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광고를 하지 않기에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을 뿐입니다. 마치 유유히 흐르는 강물 속 깊은 물처럼, 구름 뒤에 가려진 늘 커다랗게 푸른 하늘처럼, 산을 지키는 소나무처럼 그들의 가치는 한결같습니다. 사람 아래 사람 없고, 사람 위에 사람 없다는 보편적인 공평함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화폐를 사람보다 우위에 두지 않으려는 마음가짐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일어나기 전에 청탁을 받았던 원고가 하나 있습니다. 미국의 토론토에 살고 계시는 재미 교포 한국인 박선주 할머니의 청탁입니다. 제목은 <젬마의 눈물>, 함경남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살던, 고2 여학생이 6·25전쟁을 겪으며, 1·4후퇴 때 부모님과 어린 다섯 동생들과 마을 사람들과 함께 피난을 내려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부산의 영주동 산비탈 마을 판자촌에 거처를 구하며, 대청동 메리놀 병원에서 받았던, 평생을 잊지 않으시던 도움의 손길들. 잠시 동생들이 살던 서울을 다녀가면서도, 주인공 할머니에게 부산은 '내 그리운 고향 부산'이 됩니다. 이미 70년이 지난 옛이야기. 할머니의 이름은 젬마 한영실. 그리고 박 안셀모 신부님을 통해서 저에게 원고 교정을 의뢰하신 분은 세라핌 박선주 할머니입니다. 그 시절을 함께 겪으신 할머니들의 연세가 무거운 세월로 다가왔습니다.

 

이미 많은 세월이 흐른, 젬마 한영실 할머니의 소원은 자신의 이야기가 작은 소설이나 수필집이 되어 세상에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주인공 젬마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지는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 옛날 주인공 젬마 할머니의 소원을 듣게 된, 박선주 할머니는 젬마 할머니에겐 성당에서 만난 천사였습니다. 성당 재단 앞에 남몰래 꽃꽂이를 하시던 세라핌 박선주 할머니는 전문 상담가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에 녹취된 구술 상담 내용과 젬마 한영실 할머니로부터 간간히 넋두리처럼 전해 들으신 이야기를, 지금까지 간직해오고 계셨다가 신부님께 보내오신 사연입니다.

 

그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세라핌 박선주 할머니의 가슴 속에 미루어둔 숙제처럼 지녀오셨을까요? 원고를 보내오신 세라핌 박선주 할머니는 본인이 돌아가시기 전에, 책의 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계신 상황입니다. 이렇게 소중한 마음들이 모여서 강물처럼 흐르고 흘러 저에게로까지 흘러온 사연입니다. 신부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을 때는, 한글 프로그램 파일이었지만, 처음에 신부님이 받았던 원고는 손글씨였다고 합니다. 저에게 부탁을 하신 내용은, 먼저 신부님이 손글씨를 워드 작업으로 옮기긴 했으나,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으니, 읽을 수만 있도록 교정을 부탁한다는 말씀을 해오셨습니다.

 

구어체를 그대로 옮긴 글이다 보니, 문장의 완성도가 엉성하긴 했지만, 원고를 읽는 내내 저는 눈물이 나서 자꾸만 흐르는 눈물을 닦아 가면서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슬을 꿰듯이 흩어 놓은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앞뒤 흐름에 맞추어 이어서 붙이고, 희미한 말이 선명하게 드러나도록 살리고, 그러면서도 할머니의 구어체와 숨결이 그대로 살아날 수 있도록, 원고에 들어간 모든 단어와 문장들을 98%까지 원문 그대로 살리는데 원고 교정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그대로 내 마음에 투영이 되는 일입니다. 주인공 젬마 할머니 한 개인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제 부모님 세대의 이야기가 되고, 한 시대의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6·25 전쟁의 폐허 그 아픈 뿌리 위에 민주주의의 꽃을 피운 대한민국이라는 고마운 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민주주의의 꽃 속에 핀 또 하나의 작은 씨앗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어서 자라나는 어린 세대가 있으니까요. 맨몸으로 시대의 겨울을 견뎌오신 겨울나무 같은, 우리의 부모님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들이, 이제는 젊은 가슴들 안으로 이어져 유유히 흐르는 속 깊은 강물이기를 그려봅니다.

 

어디까지나 저라는 한 사람이 동떨어진 객체가 아닌, 역사와 동시대와 얽히고 섥힌 한 생명체라는 스스로에 대한 자각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처음 발병한 데는 단 한 명의 사람이 그 시작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세계로 퍼져 나간 기간은 불과 2개월 남짓이라는 시간 밖엔 안걸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얼마나 멀고도 또 가까운가. 보이지 않는 만남과 만남으로 이어져 있다는, 깊은 자각에 내 곁에 가까운 이웃과 먼 타국인들까지도 마음으로는 더욱 가까운 이웃처럼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한 하늘 아래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있어서, 하늘에는 이념도 국경도 경계도 없는 것입니다.

 

1차 교정 원고를 보내드렸더니, 신부님으로부터 한결 편하게 읽혀진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잠시 한국의 코로나가 거세어지면서, 토론토에서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오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어제 보내오신 문자에는, 분도출판사에서 <젬마의 눈물>을 출간하시겠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제가 도움이 된 부분은 1차 교정이 전부라서 미흡하기만 합니다. 원고료를 챙겨 주시려는 문자를 받고는 아직 답장을 드리기 전입니다. 그리고 한 개인으로써 제가 놓인, 저를 둘러싼 세상을 곰곰이 헤아려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혼자만의 사색입니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먼 미래의 불확심함보다는 지금 내가 속한 현실에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의미의 말입니다. 젊은 세대로부터 유행처럼 번져서 많이들 알고 계신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 와중에 제가 바라보는 소확행은 조금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 그 소확행의 순간을 영원으로 사는 일입니다. 소확행은 당장 내 눈 앞에 이익을 쫓는다거나,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라는 좁은 의미가 아닙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처럼 나 한 사람이 전세계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바이러스처럼 지구 역사상 모든 사상과 가치와 의미는 한 사람이 씨앗이 되어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가에선 한 마음, 한 생각 먹기의 의미를 무겁게 둡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도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 씨앗이 되었던 것처럼요. 신천지 이만희 교주의 한 생각이 30만 명의 신천지 집단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요. 천국은 겨자씨만한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예수의 비유가 피부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이번 코로나 19 바이러스 한국인 확진자 처음 발병 지역이 대구입니다. 이후로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구는 타지역에 비해서 확진자 수가 급속히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확진자들의 격리 치료 시설이 의료기관 수용 시설의 한계치를 넘어서게 된 것입니다. 다들 우려하던 상황에서 최초로 자체 시설을 개방한 곳이 천주교 대구대교구입니다. 천주교로부터 불 붙은 나눔과 섬김이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어서 대기업과 대형교회들도 그들의 수련관을 개방하겠다며, 나눔과 섬김의 흐름에 동참하겠다는 훈훈한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그 고마운 마음들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보내주시겠다는 원고료가 작으나마 천주교회를 통해서 나눔과 섬김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 제게도 소확행이 될 것 같습니다. 마땅히 흘러가야 할 곳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는 답장을 보내려고 합니다. <젬마의 눈물> 할머니의 원고를 읽으며 흘렸던 눈물 만큼 제 자신이 깊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이라는 불가항력 속에서 고2 여학생이던, 젬마 할머니가 고스란히 몸으로 견뎌오신 그 아픔과 눈물이, 세월 속에 잊혀지지 않고 아름다운 강물처럼 이어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한 개인의 경험은 오롯이 한 시대를 대변하니까요. 그리고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이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나아가 미래에 대한 환상보다는 매 순간 속에서 영원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어쩌면 요즘 가장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현 정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깊이 아프기에 가장 크게 기쁠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코로나 사태를 두고 중국인에 대해 문을 닫지 않고, 한결같이 북한에 대해 열린 마음. 다른 한 편에선 비난하는 마음을 모르지 않습니다. 그 비난이란 세상의 가치를 물질과 화폐만으로 환산하려는 마음들이 낳은 환상은 아닌지요. 한 개인의 청정함이 한 국가의 투명함이, 생명을 생명으로 공평하게 대하려는 첫걸음임을 봅니다.

 

적어도 현직 대통령의 마음에서 제가 보는 초점은,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까지 살피려는 마음으로 읽혀집니다. 그리고 우리 중에 누구든 그 잃어버린 어린 양 한 마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 중, 중국에 가족을 둔 분들, 북한의 실향민, 확진자가 된 분들,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마지막 한 명에게까지 햇살을 비추려는 현 정부의 정책입니다. 언제든 그 마지막 한 명이 또한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자각.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라는 자국에 대해서 믿음과 신뢰의 마음이 든다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생명을 살리는 가치는 경제와 화폐만이 아니라 믿음과 신뢰가 그 첫걸음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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