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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by 한종호 2020. 2. 25.

신동숙의 글밭(91)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흔들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의 흔들리는 마음의 중심을 다잡아 주는 말이 있다. 예수의 말씀처럼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목숨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가끔 이 말씀이 추상적으로 들려올 때면, 좀 더 구체적으로 피부로 느끼게 해주는 비슷한 말. 옛 어르신들의 말씀이기도 하다.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나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라면, 나의 부모라면, 나의 누이라면, 나의 형제라면, 나의 어린 자녀라면. 때론 가족이 아픈 것보다 내가 아픈 게 낫겠다고 여길 만큼 가족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존재가 되기에. 만일 말 못할 사정으로 가족이 없으신 분들에겐 마음을 나누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어려운 세상을 이해하는 기본 공식이자 늘 첫걸음이 된다. 나로부터 시작되면서도, 가족은 피부로 바로 느낄 수 있는 대상이기에 또 다른 나의 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식을 내 주변의 가까운 곳에 있는 생명부터 먼 곳까지 적용을 하고는 한다. 그리고 이해가 되지 않는 영화, 예술, 이단 종교, 직업 윤리, 사회 현상 등에도 그대로 적용을 하게 되면, 바른 안목과 바른 이해와 바른 선택을 하는데 크게 어긋나지 않도록 도와준다. '그 사람이, 나의 가족이라면', 이 하나의 시선이 마음의 온기와 평정을 다잡아 주는 것이다.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조용하던 아이들 학원으로부터 줄줄이 휴원 문자가 왔다. 교육청의 권고에 의해서 일주일간의 휴원에 들어가고,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서 다시 안내를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영어와 수학 학원과 운동 학원 등 모두가 휴원에 들어간 것이다. 아이들도 이제는 마음 편히 집에서 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학부모님들이 학교와 학원의 휴원을 두고 당장에 자녀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서 많이들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도서관까지도 다 문을 닫게 된 상황이다. 그런데, 아침에 모 학습지 관할 센터로부터 온 문자에는 한 줄의 안내 문장이 더 붙어 있었다. 학습지를 집에까지 안전하게 배달을 해드릴 테니, 자녀들이 집에서도 학습을 할 수 있도록 지도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학습지를 누가 배달을 해준단 말인가 싶었다. 오후가 되니까  학습지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집 근처까지 왔는데, 집을 못찾겠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위치를 설명 해드리면서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드는 생각이, 우리 작은 동네에도 신천지 교회를 다녀온 50대 여성의 확진자가 있어서, 어제와 오늘에 이어서 확진자의 동선까지 문자 안내를 계속 받고 있던 중이라는 생각에 닿았다. 코로나 확진자가 사는 아파트 이름과 들른 식당까지 내게는 다 익숙한 이름들이다. 물론, 신천지 코로나 확진자도 내 가족이라면 하는 마음이다. 가족 중에도 좀 괘씸해서 혼을 내주고 싶은 그런 가족이 있으니까.

 

마당에 나와서 얼마 남지 않은 홍삼 한 포를 손에 들고서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문득 드는 생각이 선생님의 안전이었다. 선생님은 계속 우리집을 못찾고 계시는지 시간이 지체가 되었다. 그러는 동안 휴원 안내 문자를 보내온 관할 센터 측으로 전화를 걸었다. 학습지 가가호호 배달은 본사 측에서 결의한 사안이었다. 확진자가 나온 동네에서 선생님이 온 동네를 돌면서 학습지를 배달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까, 그러지 마시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그때까지도 선생님은 우리집을 못 찾고 계셨다. 내가 먼저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서 여쭈었더니, 두 시간이 넘도록 학습지 배달을 하고 계신 중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확진자가 사는 아파트에 들어갈 때는 솔찍히 걱정도 되었다는 말씀을 해오신다. 혹시나 몰라서 차 안에서 학습지에 소독약을 막 뿌려 가면서, 배달하는 마지막 집이 우리집인데, 그러는 동안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학부모님들이 단 한 명도 안계셨다면서. 내심 미안해 하시면서도 고마워하셨다. 선생님의 남편도 걱정이 되는지 전화가 와서는 아직도 집에 안들어갔냐고 하더라면서.

 

선생님께, 우리집은 학습지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말씀드렸다. 그렇게 누군가 잘못된 줄을 살짝 끊어야만 할 것 같았다. 선생님이 집 근처까지 오신 것 같았지만,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내 아이의 학습을 챙길 수도 있었지만, '그 사람이, 내 가족이라면', 이 말이 나를, 내 욕심을 멈추게 했다. "선생님도 집에선 소중한 가족이신데,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리고, 지령을 내린 학습지 본사 측에는 학부모가 학습지 수령 거부를 해서 배달하지 못했다는 내용을 전달해 달라고 말씀을 드렸다.

 

개인 병원이 문을 닫기 전에 친정 엄마의 당뇨약을 타러 가기로 했다. 우리 동네 도로를 운전하면서 스쳐 지나는 인도에는 가끔 드물게 행인이 보이지만, 거리가 전체적으로 휑하다. 반대편에 폐지를 주으시는 할아버지가 보인다. 어제 뵌 분은 아닌데, 역시나 마스크를 끼지 않으신 모습이다. 당장에 필요한 몇 분께 손에 잡히는데로 마스크를 드리다 보니, 우리 가족이 쓸 일회용 마스크가 서너 장 뿐이다. 아차 싶어서 약국에서 천으로 된 마스크를 여러 장 샀다. 남편이 나무란다. 아무 생각 없이 다 줘버리면 어쩌냐고 한 소리 들었다. 그리고 무슨 천 마스크를 이렇게나 많이 샀느냐고.(다 나름의 뜻이 있는데.)

 

속상해서 쇼파에 앉았다가 안보던 텔레비젼을 봤다. EBS에서 방영하는 한국 기행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한국의 자연은 참 아름답다. 산도 바다도,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골진 주름살까지도 아름답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모르게 앉은채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프로그램이 바뀌고 잠이 깨어서 사온 상비약을 약통에 넣고 있으려니, 남편이 도둑놈들, 한다. 업체에서 그동안 일회용 마스크 50개에 오천원을 주고 샀는데, 오만원으로 올렸다는 내용이다. 시국이 시국이긴 하지만, 당장에 기분이 상한 듯했다. 그러면서 중국에서 직구를 했다고 한다. 중국에서 들여오는 일회용 마스크 한 개 가격은 20원이라고 한다. 대신 택배비는 비싸지만, 비행기로 한 달 정도 뒤에 도착 예정이라고 한다.

 

그때까지 천 마스크를 부지런히 빨아서 햇살에 널어서 뽀송하게 써야겠다. 남편한테 한 마디는 들었지만, 마음에는 그늘이 지지 않는다. 봄햇살처럼 마음은 따뜻하다. 그 사람들도 내 가족과 같으니까. 천 마스크는 충분히 준비했으니, 가족들이 두 개씩 번갈아 가면서 쓸 수도 있고, 서너 장은 어느 누군가에게 나눠 줄 것도 있어서 넉넉하다. 이렇게 오늘도 마음은 또 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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