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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내 인생의 로또

by 한종호 2020. 1. 30.

신동숙의 글밭(66)

 

내 인생의 로또

 

 

설 명절을 지났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새해 덕담이 오고가는 연초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언젠가부터는 복을 둘러싼 인삿말도 '복을 지으세요.', '행복하세요.', '좋은 일만 가득하세요.' 등 다양해진 모습입니다. 아마도 사람의 의식이 진화를 멈추지 않는 한 앞으로 더 창의적이고 멋진 덕담들이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복, 기복 신앙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저 역시도 이왕이면 좋은 삶이기를 바라니까요. 가족들도 건강하고, 좋은 일들만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인생이지만, 다행인 것은 '너희들로 하여금 감당치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 인생의 로또, 로또를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꽝이 될지라도 혹시나 싶은 한 가닥 희망을 또다시 걸어보는 것입니다. 당첨이 된 이후의 삶이 현재보다는 더 행복해지리라는 기대감에 떨칠 수 없는 유혹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그런 기대감을 탓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조심할 점은 목표 지향적인 맹목적 추종입니다. 제 자신과 제 주변을 둘러보면, 로또 당첨에 대한 희망처럼, '내 인생에 이것만' 있으면, 내 인생도 꽃길일 텐데 하는 모습들을 봅니다.

 

 

 

 

 

오래 전에는, 대학만 졸업하면, 좋은 직장만 들어가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면 인생이 순탄하리라 여기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IMF를 겪으며 평생 직장에 대한 믿음도 깨어졌습니다. 이제는 명문대를 중퇴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일찍 시작한 모습들을 주위에서도 흔하게 봅니다. 평생 직장과 대학 졸업장과 자본 경제 구조에 대한 환상이 그렇게 한꺼풀씩 벗겨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요즘은 성인 뿐만 아니라 어린 학생들 사이에서도 미래의 꿈이 변했습니다. 건물주가 되는 것이 꿈이랍니다. 슈퍼스타K가 된다면, 미스트롯이 된다면, 인기 아이돌이 된다면, 내 인생의 꽃길이 활짝 열릴 텐데 하며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모습들을 봅니다. 자기 자신과 함께 사는 사회와 지구 생명과 진정한 인생에 대한 충분한 자아성찰의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채, 대중의 유행에 따른 목표에 치중한 삶에서 놓쳐버리는 과정의 보석 같은 매 순간들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교회 내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일부의 작은 교회 목회자와 중직자들은 어느 정도 중형 교회의 모습까지 갖추기를 전교인의 기도 제목으로 삼습니다. 이후부터는 교회가 알아서 돌아간다는 얘기들을 하면서요. 찬양사역자는 앨범만 나왔으면 합니다. 수단이 불순하더래도 남의 것을 빼앗아서라도 일단 내 것으로 만들어 찬양으로 섬기면 하나님의 은혜가 다 덮어줄거라 믿습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교회의 양적 성장과 앨범은 로또가 됩니다. 교회만 떠나지 않는다면 이후의 삶은 건물주처럼 꼬박 들어오는 수익과 여기저기 부름으로 교회 내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기독교 방송 등 전파를 타기만 하면, 목회와 앨범은 날개를 단다고 믿습니다. 그는 수많은 무리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먹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내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진정한 선교는 나를 통해 하나님을 드러나게 하는 일입니다. 대중과 욕망을 따르는 그에게서 하나님과 예수의 모습은 종종 구름에 가리워집니다.

 

이단도 로또를 꿈꿉니다. 목표한 교인수만 채워지면, 이단도 정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개척 교회사가 흘러온 것처럼요. 어느 날 당첨될지도 모르는 로또처럼 교회의 양적인 성장만을 목표에 두고 달려온 대형 교회. 그리고 그런 대형 교회를 따르며 교회의 양적 성장만을 기도 제목으로 삼는 일부 작은 교회의 맹목적 추종. 반면에 소박한 자리에서 이웃을 섬기며 매 순간의 삶을 영원으로,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살려는 빛과 소금이 되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서 하나님과 예수를 봅니다.

 

하지만, 그런 소박한 마음을 스스로가 하찮게 여기며, 과정을 무시하고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욕망의 헛된 믿음의 삶. 때론 목표에 걸림돌이 될 것 같으면, 어린 양 한 마리 쯤은 짓밟아도, 진실 한 톨 쯤은 덮어버려도 아랑곳하지 않는 눈먼 종교인의 모습. 그러한 조직 안에서 숨 죽인 얕은 숨을 쉬며 가족의 안락과 자녀의 출세만을 구하는 성도들. 영혼의 깊은 숨을 잃어 버리고, 살아가는 것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굴레를 돌아가느라 바쁘고 숨가쁜 종교인. 이러한 모습들 또한 그 속에 몸담은 제 거울에 비춰진 저의 부끄러운 모습 중 하나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제가 본 예수가 걸어간 복음의 길은 그런 로또와 같은 양적인 부피 성장이 아닙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내세우면서도, 예수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교회 부흥의 양적 부피 성장에 눈 먼 성도들의 맹목적인 추종을 봅니다.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를 외친 전광훈 목사의 부울경(부산 울산 경남) 신년연합집회가 부산 벡스코에서 개최된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자세히 보았습니다. 후원자와 참석자들을 일일이 눈여겨보았습니다. 세상도 그렇게 교회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집니다.

 

부산에서 제일 큰 수영로 교회의 교역자가 대회장입니다. 부산 고신대실용음악과 출신 트리니티 보컬 그룹이 전광훈과 한 무대에 오릅니다. 이언주 국회의원이 참석합니다. 여신도에게 '내가 팬티 내리라면 내려!' 명령하던 전광훈의 부름에 맹목적으로 따르는 대형교회와 사역자들, 찬양사들, 4000석을 채우는 성도들. 전광훈이 손에 쥐고 무당의 요령처럼 흔드는 것은 성도들 개개인의 마음 속에 있은 탐욕입니다. 내려놓지 못하는 자아, 자녀의 출세, 부와 명예, 안락함, 육신의 모든 정욕입니다. 자기를 보아주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얻는 만족감도 밖에서 오는 허상일 뿐입니다. 사랑도 행복도 모든 실체는 마음으로부터 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마음을 지키라. 모든 생명이 이에서 남이니.'

 

그것이 성령 부흥사라고 믿는 그들의 맹목적인 믿음 앞에 싸늘한 눈물이 흐릅니다. '납작 엎드리!', '조직의 쓴맛을 봐야. 누가 갑이고.' 제가 한때 몸 담았던 담임 목사의 평소 언어습관도 그 조직에서 파생된 개체입니다. 예수는 조직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한 명 한 명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무리를 떠나 산으로 가시던 예수의 뒷모습, 홀로 하나님을 만나시던 그 예수의 그 고독의 사랑방을 그려봅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더욱 노예화된, 청산되지 못한 한국 정치와 한국 경제와 한국 교회의 양적 성장이 가져온 폐해와 한계는 지금껏 드러나고 있습니다. 각 개인의 행복지수가 낮습니다. 좁고 이기적인 행복이 행복인 줄로 착각하며, 제 생명이 아닌 헛된 숨을 쉽니다. 헛된 권력과 분간 못하는 거짓에 현혹된 삶을 살아가는 눈 먼 영혼의 불순함입니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노예처럼 살아가는 삶. 예수의 복음은 하나님의 자녀된 삶입니다.

 

하나님은 저마다의 가슴 속에 한 알의 씨앗으로 공평하게 계십니다. 부흥 집회처럼 큰 소리 치며 밖으로부터 오는 맹신적이고 광란적인 성령이 아닙니다. 같은 집회의 자리라도 참된 목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저마다의 내면입니다. 예수가 그러했듯이요. 내 어둔 가슴 속으로부터 잔잔히 떠오르는 눈물처럼 별빛처럼 태양처럼 맑고 환한 실체입니다. 진리와 사랑과 양심의 빛으로 발하는 실체의 하나님입니다.

 

한 영혼 한 영혼이 예수의 고독처럼, 고독의 사랑방에서 하나님을 만난다면, 일상의 삶 속에서 저마다 내면으로부터 피어나는 자기 자신의 꽃을 피우며, 영혼의 깊은 숨을 쉬며 맑고 환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한 걸음씩 세상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에서 비로소 하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모습을 그려봅니다. 그런 교회를 세상은 따스한 빛으로 느낄 테지요.

 

그렇게 한국교회의 부흥사에서 전광훈이 '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를 외치는 곳은 수많은 무리들 앞입니다. 대중은 개인을 미치게 만듭니다. 대중이 모이면 개인은 그것이 옳다고 믿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양적으로 대형화된 그 조직과 권력 앞에 꼼짝 못하고 전광훈의 부름에 응하는 성도들이 어린 제 눈에는 좀비처럼 보입니다. 예수의 보혈을 몸에 발라 분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전광훈의 소리에만 반응하는 눈먼 좀비들. 제 의식이 초등학생 수준이라서 영화 '부산행'이 떠올랐을 테지요. 과연 전광훈의 말을 실수처럼 허물을 덮어주려는 성도의 마음이 예수로부터 난 사랑인지, 제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난 맹신인지 자세히 들여다 보십시오.

 

역사는 심판을 할 것입니다. 탐욕의 로또와 기복신앙에 대한 먹구름 같은 환상이 벗겨진 밝은 눈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내가 가고 성령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 복이 있다고 하신 예수. 진리의 영, 성령은 이방인이나 누구에게든 공평하게 주신 양심입니다. 해는 어김없이 온 세상에 공평하게 떠오릅니다.  어둔 가슴에도 해가 떠오를 테고요. 그리고 저는 매일 아침 매 순간 어둡고 가난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들숨날숨마다 하나님을, 빛과 사랑의 하나님을 구합니다.

 

저 역시 어린 자녀에게 물려주기를 원하는 로또가 있습니다. 하나님입니다. 예수입니다. 자연 속에서 단순함과 가난함 속에서도 하나님과 예수를 가슴에 품고서 늘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런 자녀의 인생은 밝고 선하게 흘러갈 수 있을 테니까요. 그것이 저의 믿음입니다.

 

일상 가운데 잠시 멈추고! 5분, 10분 그 이상의 고요한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침묵의 기도 속에서 오로지 하나님과 예수만 부르며, 그 시간 동안 깨어서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다면, 그렇게 씻기고 씻기운 눈으로 나와 주변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느끼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괜찮은 것은 내가 느끼지 못하는 순간 조차도 저는 그 분안에 있을 테니까요. 단지 '너희는 멈추고 하나님 나를 알라.' 시편 46편의 말씀을 따릅니다.

 

멈추고 말없이 고요한 가운데, 왈칵 뜨거운 눈물로 오시는 예수를 가난한 가슴에 모시는 일.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제 가난한 영혼이 그 충만감의 은총을 누립니다. 그 은총의 평온함을 저 혼자만 누리기에는 복 되고 복 되어서 저는 자녀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고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얘기합니다. '하나님을 부르고,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자.'고 합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으로 내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기를 소망합니다.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고독의 사랑방입니다. 분주한 일상 가운데 잠시 멈추고, 고독의 사랑방에 머물러 마음의 안식을 누리는 지상의 천국입니다.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만이 행복이 아님을 존재 그 자체만으로 충만한 삶이 있으니까요. 그런 삶에는 선하고 밝고 맑은 흐름이 평화의 강물처럼 흐를 테지요. 설령 그렇지 않더래도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곳은 지옥이래도 천국일 테니까요. 하나님을 가려버린 복이 아닌 하나님이 밝히 드러나는 복된 삶. 내 인생의 로또는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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