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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by 다니엘심 2020. 1. 18.

신동숙의 글밭(61)


내 어깨에 진 짐이 무거우면, 가벼웁게



아들은 아침부터 티비를 켜면서 쇼파에 자리를 잡고는 한 마리 봉황새처럼 이불을 친친 감고서 둥지처럼 포근하게 만듭니다. 아예 자리를 잡고 앉은 모양새입니다. 아침식사를 챙기고 사과와 단감을 깎아 주고는 억지로 데리고 나오려다가, 먼저 가 있을 테니, 오게 되면 딸기 쥬스와 빵을 사주겠다는 말만 남기고 나옵니다. 


반납할 대여섯 권의 책과 읽을 책과 노트와 필기구와 물통을 넣은 커다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 맵니다. 몸을 짓누르는 가방의 무게로 순간 숨이 푹 땅으로 내려앉을 듯 하지만, 한쪽 귀에만 꽂은 이어폰에서 흘러 나오는 말씀이 어둡고 구석진 마음마다 밝혀주는 햇살 같아서 발걸음을 가벼웁게 해줍니다. 


집을 나서고 보니 5일 장날입니다. 아침밥이 벌써 소화가 되었는지, 혼자 걷는 걸음마다 아들이 좋아하는 군겆질거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함께 있었다면, 엄마 소매를 붙들고 걸음을 멈추어 사달라고 했을 떡볶이, 어묵, 닭꼬지, 김말이입니다. 억지로라도 데리고 집을 나서지 않은 후회가 밀려옵니다. 순간 집으로 되돌아갈까 싶은 마음이 일었지만, 작은 의지가 이내 제 풀에 꺾인 것은 어깨를 누르는 가방의 무게가 마냥 무겁기 때문입니다. 




살아가다 보면 가던 걸음을 돌이켜야 하거나 때로는 천천히 주변을 살피다 보면 내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마음은 있어도 선뜻 몸이 가지 못하는 이유가 저마다 짊어진 일상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은 아닌가 헤아려봅니다.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는 예수의 말씀이 한 줄기 햇살처럼 전해져옵니다. 두려움과 걱정과 염려, 불신과 미움과 분리의 무거운 마음을 발걸음마다 날숨마다 내려놓을 수 있다면, 오늘 하루 나에게 내려주시는 사랑의 평화를 이 좁다란 가슴에도 담을 수 있을런지요.


무엇보다 가벼웁게 할 일입니다.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도록 수시로 내려놓을 일입니다. 그 홀가분함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자유임을 봅니다. 언제든 나를 부르는 소리에 '네'라며 가볍게 대답할 수 있도록. 날숨마다 몸에서 힘을 빼는 연습을 합니다. 날숨마다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합니다. 조금은 길게 내쉬는 날숨 그 다음에 들숨처럼 저절로 채워주시는 은총을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내 안에 고요히 머물러 쉼을 얻는 평화와 사랑의 호흡이 강물처럼 이어지기를요. 그리고 아들이 언젠가는 텔레비전과 이불 없이도 스스로 앉아서 고요히 마음을 바라보는 날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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