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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무릎을 땅으로

by 한종호 2020. 1. 4.

신동숙의 글밭(49)

 

무릎을 땅으로

 

"넌 학생인데, 실수로 신호를 잘못 봤다고 말하지!" 함께 병실을 쓰시던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과 면회 온 언니들, 아주머니들, 어른들의 안타까워서 하는 말들. "어쨌거나 횡단보도 안에 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보호 받을 수 있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앞둔 4월, 벚꽃이 환하던 어느날 나는 병실에 누워 있었다. 그건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빨간불에 횡단보도를 건넜으니까. 그 순간엔 마치 빨간불에 건너도 될 것처럼 모든 상황이 받쳐 주긴 했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면 안되는 것이었다. 그건 교통 법규, 약속을 어기는 일이니까.

 

내일 시험을 앞둔 일요일 밤, 학교 근처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치고, 밤 9시가 넘어서 버스에서 내렸다. 집에 올 때 바게트 빵을 사오라던 동생의 부탁이 생각나 집과 반대쪽으로 향했다. 사거리 횡단보도 앞, 이게 왠일인가! 이쪽 저쪽 둘러봐도 달리는 차도 사람도 하나도 없는 텅 빈 거리를 보는 건 무척이나 낯설었다. 텅 빈 공간, 마치 땅이 아닌, 하늘 안에 나 혼자 있는 기분. 빨간 신호등은 힘 없는 허수아비. 나는 두 손으로 겨드랑이 옆 가방 끈을 붙잡고 한 마리 새가 되어 사뿐히 날 듯이 뛰었다.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넜을 무렵. 문득 내 앞에 서너 명의 사람이 서 있는 듯 보였다. 순간 너무나 부끄럽단 마음이 내 온몸을 감싸면서 나는 그 자리에서 그만 얼음이 되었다.

 

1초 후 얼음땡하고 내 몸을 쳐준 건, 사람 손이 아닌 승용차 앞 범퍼였다. 나는 정말로 한 마리 새가 되어서 공중으로 붕 떠올라 날 수 있었으나 이내 곧 추락하고 말았다. 부딪히던 순간의 느낌은 통증이 아니었다. 묵직함과 온 세상이 하얗게 되는 공의 세계. 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땅으로 곤두박질한 불쌍한 새 한 마리를 누군가 보듬어 안았고, 나는 둥지처럼 폭신한 몸에 안긴 채 놀란 숨을 헐떡이며 차는 어디론가 달렸다. 비로소 눈을 뜬 곳은 대학병원 응급실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누운 채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의사 선생님, 담요가 더럽다며 깨끗한 담요로 바꿔 주던 다리를 절뚝이던 간호사, 경찰관... 누운 채 나는 한 마디를 했다. "네!", 빨간불에 건넜냐는 물음이었고, 난 누워서도 몸을 살폈다. 엑스-ray를 다시 찍었던 건, 내가 불편한 곳은 거기가 아니라는 말에 의사 선생님의 진단 부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 몸이 들려 주는 진실에 반응했을 뿐이다. 빨간불이라는 말이 불러온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피해 보상 없이 엄마는 한 달 동안 생업을 접어야 했으니까.

 

병실로 옮겨지고, 나를 보듬었던 아주머니가 병문안을 오셨다. 그 다음 날도 오셨고, 그때 선물이라며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주시고 가신 것은 미니 카세트, 우리 대학생 아들이 녹음해 주었다며 앞뒤로 빽빽이 4시간 가량 녹음이 된 테이프, <간디>와 이어령 선생님의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테잎 안에서 흘러 나온 목소리는 모두가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 새로운 세상이었다. 여고 시절과 대학생이 되면서 그 목소리의 이름들이 하나 둘 내 안으로 들어왔다. 유제하, 김현식, 정태춘과 박은옥, 시인과 촌장. 모두가 잠든 어둔 밤 고층 병실 통유리창으로 내려다 보던 옹기종기 불 켜진 마을들. 정태춘의 '시인의 마을'을 들으며, 그대로 시인이 사는 마을로 보였다. 테잎이 늘어지도록 반복해서 듣고 또 들었다. 지금까지도 내 정서의 커다란 밑그림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마음과 몸이 들려주는 진실에 그대로 반응하는 일은 당장 눈앞에 손해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하지만, 늘 그렇다. 손해를 보더래도 진실을 가리는 것은 내겐 숨구멍을 틀어 막는 더 가혹한 일이라는 걸. 내 안의 영혼이 숨을 쉴 수 없는건 가장 슬픈 일이니까. 눈앞이 캄캄한 벽 앞에 설 때마다, 선택한 건 언제나 내면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가 내 어둠에 가려질세라 내 무딘 마음에 흐려질세라 눈이 하얗게 시리도록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고, 별을 본다. 네댓 살 어릴 적에 하늘이 내 가슴으로 들어온 후.

 

그 진실이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된다는 걸 언젠가부터 알 것도 같았다. 이어령 선생님의 <지성에서 영성으로>는 30대의 내가 교회를 다니게 된 열쇠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읽고 있는 그의 책 속에서 무한히 하나님의 사랑 아래에서 빨간색 밑줄과 별표, 하트표를 긋고 있는 백발노장의 뼈마디가 굵은 손가락을 본다.

 

흙을 파는 어린 아이처럼 나무 꼬챙이로 때론 맨 손가락으로 지성의 흙을 파헤치느라 굵어지고 갈라진 거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정말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지혜도, 지성도, 정의감도 아니라 사랑이다.'(이어령 말모음, <우물을 파는 사람, 436쪽)

 

'신앙을 가지면서 번뜩이는 감각, 냉철한 비판력이 약해지는 것은 아닌가 묻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거꾸로다.... 지성을 버리는 게 아니라 넘어서는 거니까.... 지성은 깨달음으로 가는 사다리다.'(이어령 말모음, <우물을 파는 사람>, 93쪽)

 

이어령 선생의 지성이 나의 덩어리진 의식과 의식 사이를 비집고서 훑고 지나감을 본다. 하지만, 차갑지가 않다. 이미 사랑의 빛으로 감싸여 본 그의 지성은 이제는 따뜻하고 그 어느 영성가 와 시인과 구도자 못지 않게 빛나도록 아름답기까지 하다.

 

'무릎을 봐라. 무릎이 성한 사람은 값어치가 없다. 일어설 때 몇 번이고 무릎을 깨뜨려 본 사람, 무릎에 상처가 있는 사람이 삶을 제대로 사는 사람이다.' 이어령 선생은 그 자신의 깨어지고 아물고 상처투성이의 무릎으로 다시 하나님의 사랑 앞에 무릎을 꿇는다.(이어령 말모음, <우물을 파는 사람>, 두란노, 2012)

 

그날의 교통사고 때, 붕 떠올라 하늘을 날고서 맨 처음으로 땅에 닿은 곳은 양 무릎이었다. 어릴 적 산동네 비탈길을 뛰어서 내려오다가 사정없이 넘어져 깨어지고 피가 나던 무릎. 빨간색 아까정끼가 붉은 동백꽃처럼 피어서 늘 그렇게 지지 않던 무릎. 그날 내 몸의 상처는 그게 다였다. 의사 선생님의 처방은 꼼짝 안하고 한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것. 몸 속 깊이 있는 뼈라서 수술이 불가능하고, 살짝 어긋나 붙어도 생활에 지장이 없는 곳이라 가능한 처방이라시며.

 

그때 드렸던 기도가 있다. 살려 주시면 남은 생은 진실되게 착하게 살겠습니다. 살려주시는 분이 있다면 은혜를 져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그렇게 오늘도 백열 번의 무릎을 구부려 땅으로 엎드린다. 깊어진다. 나를 내려놓은 후 비로소 눈물로 씻기고 맑아진 눈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싶으니까.

 

한창 꼭대기에서 머물던 성적은 그날 이후 내리막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때 친구들로부터 받은 러브레터 한 박스는 지금까지 먼지 이불을 덮고서 책장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그렇게 일일이 답장을 하면서 편지 쓰기에 재미를 붙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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