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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나는 아직 멀었다

by 한종호 2019. 12. 29.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354)

 

 나는 아직 멀었다

 

하필이면 암호가 입맞춤이었을까? 유다 말이다. 예수를 넘겨주며 무리에게 예수를 적시할 암호로 미리 짠 것이 입맞춤이었으니 말이다. 어떻게 예수를 알릴까를 왜 고민하지 않았을까, 그 끝에 찾아낸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제자가 스승을 만나 입맞춤을 하는 것은 반가움과 존경의 뜻이 담긴 행동,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일이었다. 껄끄러운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도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으니, 그것이 유다의 제안이었다면 그의 머리가 비상하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두려움이 읽힌다. “내가 입을 맞추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잡아서 단단히 끌고 가시오.” 라고 무리들에게 말한다. 단단히 끌고 가라는 말을 왜 덧붙였을까? 예수를 놓칠까 걱정을 했다기보다는, 다시는 예수를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일 뒤로 또 다시 예수의 얼굴을 대면할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유다의 키스로 인해 예수는 그 자리에서 붙잡힌다. 그 대목에 이르면 마음이 먹먹하고 아뜩해진다. 예수가 붙잡혔다는 것은 결국 예수가 유다의 키스를 받아주신 것이었다. 급작스레 도둑 키스를 한 것은 아니었을 터, 만약 유다가 입맞춤을 하려고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면 나는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불 같은 분노이든 얼음 같은 측은함이든 뭐라 한 마디를 하지 않았을까? 예리한 칼날이 마음을 베는 것 같은 뼈아픈 말을 건네지 않았을까? 유다의 입맞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를 리 없는 분이 아무 말 없이 유다의 키스를 받는다. 사랑의 인사를 받듯 배반의 암호를 받으신다.  

 

까마득하다. 나는 도무지 그럴 수가 없다. 그분을 따르며 닮기 원한다 하기엔, 나는 너무나 멀다.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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