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정에 천국을 투사(投射)시키라

백소영의 다시 김교신을 생각한다(9) 

우리의 가정에 천국을 투사(投射)시키라

- <가정생활> 19396 -

 

김교신은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다. 부부금슬도 좋았을 뿐더러 안팎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늘 들고 나는 사이 소위 남정네의 손이 필요한 곳이 없나 살뜰히 살피고 미리 손길을 뻗었던 근면 성실한 가장이었다. 교사의 빠듯한 수입으로 <성서조선>지 출간과 우송비를 감당하고 학생들의 어려운 사정 또한 외면하지 못하는 성정이었으니, 필시 넉넉한 생활비를 제공하지는 못했을 터이다. 그러나 자녀들의 회고를 들어보아도 김교신은 당시로는 드물게 집안을 챙기는 사랑 많은 가장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컸던 김교신이었다. 그러니 좋은 아버지, 좋은 남편의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배운 까닭에 자연스레 터득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많이 노력했을 것이다. 하여, 공적으로 드러나는 교사의 모습만큼이나 일상을 나누는 가정에서도 선한 가장이 되기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했을 것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고 하니, 평천하보다 치국보다 제가가 더 어려운 일인 듯하다. 단상에서 고명한 교사 노릇 하기는 차라리 쉬우나 가정에서 선한 주인 되기는 실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므로 독실한 신도중에도 가정 살림을 해체하여 버리고 홀로 산중에 은거하기를 원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은 가정에서 성도(聖徒)의 생활하기가 얼마나 짐이 무거운 것임을 말함이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인 듯 서술하고 있지만 앞뒤 문맥을 보면 김교신 자신도 종종 홀로 자유롭게 살고픈 마음이 일었던 것 같다. 그가 완전히 종일을 서적과 함께 호흡하며 사는 날을 희망했던 것을 보면, 교사로서, 성서조선 모임 인도자로서, 가장으로서 책무를 다하느라 개인으로서 하고픈 일들을 많이 접으며 참으며 살았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김교신의 가장 큰 매력은 그가 신앙 안에서 가족들의 관계성을 끊임없이 고민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은 알 턱이 없었고, 오히려 유교적 사상이 체화된 김교신이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김교신은 당시 유교 사회는 물론 기독교 공동체 안에서도 지배적이었던 가부장제의 껍질을 어느 정도는벗어버리고 있다. <성서조선> 모임에 나오는 한 독실한 여신도가 결혼 10년차 다섯 자녀를 기르며 가정에만 갇혀 지내다보니 가정 밖에 며칠이라도 나가 보고 싶다” “항상 속에 차지 못한 것이 있다고 외치는 고백을 들으며, 그리고 다 자란 딸이 출가하여 시집살이의 고됨을 가까이서 보면서, 김교신은 자신이 당연이라고 생각했던 남편과 아내의 관계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힐티(Hilty) 선생의 가정훈에 주인은 밖에 대하여 사자 같고 안에 대하여 양과 같으라했건마는 우리는 처자를 대할 때만 사자 같지 않은가. 부부 된 이상 재산의 처분권에 있어서도 동권이라야 한다 했건마는 우리는 주부의 영적 수양의 여비에까지도 핑계를 대지 않았던가. 권리 없어 보이는 자의 권리를 존중하며 약한 자의 항의에 몸서리쳐 순종하기까지 우리 신앙의 도정은 아직 전도요원하다 할 수밖에 없다. 가장 약한 자의 정당한 의지가 장해 없이 이루어지는 곳이 천국일까 한다. 우리의 가정에 천국을 투사(投射)시키라.

실로 많은 기독교 남성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시간과 금전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아내는 자신의 성장을 온전케 하는 보조자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그것이 아내의 창조 목적이라고까지 신앙적 정당화를 일삼아 온 교계 지도자들이 아직도 많다.

 

 

오늘날까지도 개신교의 가장 지배적인 남편-아내 모델은 사도 바울이 말했던 그리스도와 교회의 은유이다. 남편도 아내도 같은 인간이므로 존재론적으로는 평등하되, 가정 안에서 그 기능은 위계적이라는 논리다. 하여 아내는 남편의 권위에 순종하고 남편을 그리스도처럼 주()로 받들고 따르라는 거다. 물론 이렇게 순종적인 아내의 덕목은 교회를 위하여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남편의 덕목과 짝을 이룬다. 그러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라 한다.

물론 사도바울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모델이었다. 사도바울의 시절은 강한 가부장제도가 작동하던 한중간이었다. 한 가정의 가장은 아내와 아이들을 향해 생살여탈권까지 가지던 절대 ()’였다. 그러나 교회의 가 되시는 그리스도는 오히려 공동체 구성원들을 위하여 자신이 죽기를 서슴지 않는 사랑의 주가 되신다. 이를 고백했던 바울이기에, 그리스도를 닮아 각 가정의 가장들 또한 가정에서 절대자로 군림하는 가장의 모습을 버리고 죽기까지 사랑하는 그리스도를 닮으라 권고했을 일이다.

그러나 이는 바울의 문화적 한계다. 오히려 그의 교회론에 입각하여 풀어야 남편-아내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가 온전히 전달된다. 기독 신앙을 가진 이들은 모두 한 가정의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부모가 되신 하나님과, 인간의 갈 길과 살 길을 먼저 보이신 맏아들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서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형제자매들로 이루어진 우주적 공동체가 하나님의 가문(오이코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인은 밖에 대하여 사자 같고 안에 대하여 양 같으라는 교훈은 반만 옳다. 남편도 아내도 온전히 양이다. 목자는, 주인은 따로 있다. 한 가정의 는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기독 신앙을 가진 남편과 아내, 최소한 그 둘이 모여 이룬 공동체는 이미 교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에클레시아의 기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두 세 사람! 사도 바울의 혁명적 교회론을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리스도와 몸의 은유를 동등한 인간인 남편과 아내에게 적용할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기독 신앙의 핵심과 기독 공동체의 원리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었던 김교신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명적인 부부(夫婦)론을 펼쳤다. 유교적 덕목을 체화해 살았던 김교신이었음에도 말이다. 기독교의 해방적 혁명성이 인성과 덕성을 존중하는 유교적 텍스트를 만나 아내의 주체됨을 선언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추측컨대 10년을 하루같이 부엌간만 지키는 주부에게 나가 보고 싶은 생각이 어찌 없으랴. 기소불욕물시어인[논어》 「위령공편자기가 하고자 아니한 바를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이라는 구가 내 가슴에 소생하였으므로 남의 가정은 할 수 없으나 먼저 우리 집 40넘은 주부에게 가고 싶은 때에 가고 싶은 데로 가라는 것을 선언한다. 친정으로도 좋고 사경회로도 가하고.

아니, 뭐 굳이 남편이 이런 선언을 하지 않아도 나는 가고 싶은 때에 가고 싶은 데로 잘만 다닌다, 그렇게 생각할 오늘의 여신도들이 많을 줄 안다. 회사에 갇혀 사는 우리보다 훨씬 자유롭고 잘만 다니더구만, 그렇게 억울해할 오늘의 남신도들도 많을 줄 안다. 그러나 김교신의 이 선언이 70여년도 훨씬 전의 문화적 상황에서 선포되었음을 고려한다면,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문자적 적용이 아니라 한 가정 안에서 작동하는 근본 원칙이어야 한다. 소위 황금률이라고도 부르는 이 원칙은 예수께서도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태복음 7:12)는 말씀으로 강조하신 바 있다. 천국, 하나님 나라! 만일 우리 가정이 하나님 나라의 구체적 투사(投射)라고 고백될 수 있다면, 그것은 낭만적 사랑의 스윗~ 스윗~ 홈의 감정 때문이 아니다. 가장 작은 단위의 교회인 가정 안에서도 교회의 작동 원리가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머리가 그리스도이시듯, 가정의 머리는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순종적이고 평등한양들이 되어 서로가 함께 서로를 세우며 사랑으로 살아가는 평등 공동체다.

설 연휴다. 모처럼 가족 공동체가 모여 있을 터인데, 스스로 가장이라고 여기는 신자가 있다면 얼른 주변을 둘러보라. 지금 아내의 정당한 의지가 장애 없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지금 당신의 가정이 하나님 나라의 투사인지교회인지.

 

백소영/이화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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