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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고흐가 가슴에 품은 것은

by 한종호 2019. 12. 19.

신동숙의 글밭(34)

 

고흐가 가슴에 품은 것은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라는 명성이 어울리는 고흐. 그가 남긴 그림과 편지글들은 내 영혼을 울린다. 그리고 눈이 부시도록 따뜻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빛깔로 내 가슴을 물들인다.

 

1853년 3월 30일, 네델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그는 엄격한 칼뱅파 목사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1877년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 공부를 한 후 작은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으나, 그 시대가 감당하기엔 그의 가슴은 너무나 뜨거웠는지도 모른다.

 

고흐가 가슴에 품은 건 무엇인가? 그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뜨거운 심장을 지니게 했는지. 그의 그림과 글을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뿌리 깊이 고뇌하는 한 영혼과 만난다.

 

눈 오는 밤, 조금은 쓸쓸한 이 겨울에 어울리는 한때의 유행가. 가수 조정현의 [그 아픔까지 사랑한 거야]. 입에서 입으로 불려지던 그 노랫말이 가슴까지 내려와 현실이 되는 일이 쉽지 않음을 세월이 갈수록 느낀다.

 

 

 

 

임신한 몸으로 남자한테 버림받고 겨울날 길을 헤매고 있던 시엔과 어린 딸. 병색이 짙은 그녀를 목욕시키고, 보살펴 준 고흐. 고흐의 눈길이 닿은 곳은 인간의 끝 지점이다. 아픔, 외면, 추함, 버림받음, 가난, 질병, 배고픔, 신경질, 연약함, 슬픔, 불행. 그런 그녀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가족들로부터도 타락했다고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던 고흐. 그 어둡고 낮고 가난한 자리에 고흐의 사랑은 뿌리를 내린다.

 

아름다움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온통 어둠인 그 낮은 곳으로 향하는 고흐의 눈길, 그의 눈길은 햇살처럼 환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그때는 차라리 뜨거웠으리라. 불덩이 같던 그의 가슴을 감당하기엔 그 시대가 너무나 어두웠다. 아니 어쩌면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늘 당장 내 가족 중 누군가가 시엔과 같은 이를 집으로 데리고 들어온다면 어떻게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평생을 따라다닌 그의 뿌리 깊은 고뇌와 고독. 그가 닿고자 한 곳은 햇살이 닿을 수 있는 끝 지점이고, 빗물이 눈물처럼 고이는 땅이고, 예수가 친구가 되어 함께 머물던 자리다. 그런 그가 가슴에 품은 건 빛, 진리에 뿌리를 내린 사랑이었다.

 

사실 묘사에 치중하던 당대의 그림들에선 볼 수 없는 화풍을 새롭게 창조한 그림. 고흐의 그림엔 유독 그림자가 없다. 그림자가 없는 시선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이다. 빛이다. 빛이 밖에 있다면 어떻게든 그림자는 따라올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자신이 빛이 된다면, 빛을 가슴에 품고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세상은 온통 눈물 겹도록 눈부신 순간들 뿐일 테니까. 낮고 작고 외지고 소박하고 하찮고 소외된 것들을 품으려는 그 연하고 선한 마음 앞에서 나는 흔들린다.

 

진리와 사랑의 예수처럼, 고흐의 가슴에 깊이 뿌리 내린 진리와 사랑이 그의 가슴을 온통 빛으로 채웠을 터. 내겐 글을 쓰는 일이 빛을 비추는 일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건 크고 많고 거창한 일이 아니다. 그저 작은 관심 하나, 작은 눈길 하나. 따뜻한 말 한 마디면 충분한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건, 곁에 있는 사람의 눈가에 맺힌 눈물 한 방울이면 충분한지도 모르니까.

 

찬바람 부는 겨울날 햇살이 내려앉은 마른 풀섶에는 사이사이 어린 초록풀들이 싱그럽다. 햇살이 내려앉는 곳, 우리의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는 곳마다 이 세상 그 어디라도 봄이다. 고흐 영혼의 그림처럼 따뜻한 노란 빛깔이다.

 

작은 위로 하나
...

작은 위로 하나
어둔 마음에 띄우는
작은 별 하나

작은 위로 하나
외로운 마음에 피우는
작은 꽃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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