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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by 한종호 2019. 12. 6.

신동숙의 글밭(24)

 

개밥그릇에 손가락 담그기

 

식구들이 진돗개 새끼 한 마리를 데려와 키우자고 했을 때 결사 반대를 강력히 주장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나에게 강아지는 오롯이 꼼짝 못하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것이기에.

 

그러던 어느날 집에 오니 아들이 드디어 자기한테도 동생이 생겼다며 신이 나서 눈까지 반짝인다. 성은 김 씨고 이름도 지었단다. 김복순.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 품 안에 쏙 안기는 강아지를 아들과 딸은 틈나는 대로 안아 주고, 밥도 챙기고, 똥도 치우고, 주말이면 강변길로 오솔길로 떠나는 산책이 즐거운 가족 소풍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서너 달이 못갔다. 하루가 다르게 덩치가 커지는 복순이. 일년이 채 안되어 복순이의 덩치는 아들만큼 커진 것이다. 똥도 엄청나다. 한 학년씩 올라간 아이들은 집으로 오는 시간도 늦어졌다. 예상했던 일들이 하나 둘 현실로 일어나고. 개밥을 주는 일도, 똥을 치우는 일도 나와 친정엄마의 숙제가 된 것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하루도 빠질 수 없는. 한 생명 살리기.

 

문제는 겨울이 되고부터 고민이 생겼다. 늘 마당에 묶여 있어야 하는 복순이. 개집에 안 입는 옷가지를 깔아 주면, 복순이는 도로 물고 나온다. 왜 그런지 나는 아직도 몰라서 답답하다. 밤새 비라도 내리는 날엔 기어이 축축하게 만들어 놓고는 그러길 수차례. 춥든가 말든가 포기를 했다가 또다시 헌옷가지를 새로 깔아준다.

 

 

 

 

묶여 있는 짐승에게 겨울나기란 어떤 경험일까? 털이 있어서 추위를 덜 타는지. 요즘 나에겐 숙제다. 찬물을 주다가 12월이 되면서 온수를 타서 따뜻하게 온도를 맞춰 개밥과 흰밥을 섞어 말아주고 있다. 혹시나 혀라도 데일까 봐, 싫지만 개밥그릇에 손가락을 살째기 담근다. 따뜻한 정도로 바로 먹기 좋게 온도를 맞추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2년 동안 나는 복순이를 안아준 적이 없다. 매정하다 여길지 모르지만, 동물의 몸이 영 어색한 것이다. 기껏 큰 맘 먹고 쓰다듬어 주는 정도. 그렇다고 미워하지는 않는다. 개가 싫어하는 짓을 안할 뿐. 동물보다는 식물이 좋은 것이다. 나무가 좋고 꽃이 좋고 달과 별이 그저 좋은 것이다.

 

처음엔 사람만 보면 좋아서 펄쩍거리며 덤비듯 앞발을 들던 복순이를 똑똑하다고 인정하게 된 것은 집에 온지 몇 달이 지난 후였다. 밥을 주려고 다가가면, 여지없이 앞발을 세워 안기려 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뺐는데, 그러기를 수차례 어느샌가 복순이가 얌전히 앉아서 밥을 기다리는 것이다. 내가 복순이에게 마음이 열린 것도 그 일이 있고부터다. 복순이도 점점 내가 싫어하는 짓은 안하는 것이다. 마치 내 마음 안다는 듯한 그 순한 눈으로.

 

나는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복순이 눈을 쳐다보며 인사를 하곤 한다. 그러면 복순이는 그 순한 눈으로 슬쩍 나를 봤다가 눈두덩이를 찡긋거리다가 말없이 고개를 돌리곤 한다. "복순아, 갔다올께", "복순아, 잘 있었어?", 겨울이 되고부터 하나 더 늘어난 인사말, "복순아, 안 추워?". 먼저 말이 없으니, 먼저 물어볼 수밖에.

 

하나님이 개를 만드실 때, 야생의 개가 스스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개는 겨울이라도 물을 끓여 먹진 못했으리라. 그러니 짐승에겐 찬물이 자연스런 마실 물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얼마 전까지도 찬물만 줬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편칠 못했던 것은. 옛날 어른들이 소죽을 끓여줬다는 얘기가 있지않던가. 한겨울에도 마당에 묶여서 추운 개한테 찬물을 줘도 되는지 고민은 이어지고 깊어지고.

 

그러다가 한 생각에 가닿았다. 그건 어디까지나 에덴동산에서 살 때의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후, 추운 겨울이 생기게 된 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짐승은 사람으로인해 겪지 않아도 될 혹한의 겨울을 겪게 된 건 아닌가 하고.

 

그렇담 털이 있는 복순이라도 나처럼 추위를 오롯이 느낄 것이기에, 개밥을 데워 줘야 하는 게 맞는 것이다. 사람으로인해 추운 겨울을 견뎌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면. 그것도 우리집처럼 목줄에 묶인 채로 어쩔 수 없이. 복순이에게 밥을 주면서도 늘 미안한 마음이 강물처럼 내 마음 밑바닥으로 흐르는 이유를 거기에서 찾을 수 있을까.

 

오늘 저녁에도 싫지만 개밥그릇에 손가락을 담근다. 너무 뜨겁거나 차지 않도록. 혀로 먼저 감지하는 복순이가 혹시나 피치 못해 약간이라도 뜨거워 혀끝이라도 데이면 말 못하는 짐승이 밤새 추운 마당에서 영문도 모르고 혀까지 얼얼해선 안될 테니까.

 

말 못하는 짐승, 말 못하는 갓난아기, 표현 못하는 아이들. 말이 되지 못한 마음의 이야기들이 나는 신경이 쓰인다. 말이라도 할 줄 알면 그대로만 해주면 될 텐데, 관심을 기울이고 살피고 또 살필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다.

 

겨울 나무가 그렇고, 들에 꽃이 그렇고, 밤하늘 먼 별이 그렇다. 어째서 자연은 이렇게 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내 곁에 말없이 한결같이 있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이다. 말없이 선하고 아름다운 생명들, 게중엔 여린 생명 앞에선 더 마음이 작아져 내려앉는다.

 

오로지 마음으로만 만날 수 있는, 사랑만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는 그 좁은 마음길을 따라서 오늘도 살째기 한 걸음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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