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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주신 소망 한 알

by 한종호 2019. 11. 25.

신동숙의 글밭(7)

 

주신 소망 한 알

...

"우리 같이 점심 먹어요. 아구탕 맛있는 집 있는데, 아구탕 괜찮으세요?", "예!". 전화기 너머 아름다운 울림 소리로 청하는  따뜻한 초대에 어찌 응하지 않을 수 있나요. 시노래 가수 박경하 선생님이십니다. 시와 노래는 이란성 쌍둥이와 같은, 한 마음이면서 두 개의 몸이 된. 끈끈한 끈으로 엮인 사이. 시는 노래를 그리워하고, 노래는 시를 그리워하는 서로가 서로에겐 그리움입니다.

 

만나면 마음을 담은 작은 선물을 전하고 싶었답니다. 예쁘게 포장된 빵을 사갖고 갈까, 예쁜 악세사리를 사갖고 갈까. 아직은 취향을 잘 몰라서 선뜻 결정을 못하고 그렇게 시간만 보내고 있었답니다. 약속한 날은 다가오는데, 그러다가 문득 당연하다는 듯 순간 든 생각이 있답니다. 시집. 사실 처음부터 박경하 선생님과 제가 맺어지게 된 계기가 간간히 올리는 시詩였는 걸요. 제가 좋아하는 한희철 목사님의 <어느 날의 기도> 시집을  읽으신다면 아마도 아름다우신 마음에 잔잔한 영혼의 울림이 더해져 시심이 더욱 깊어지시리라. 저 혼자 벌써 그런 흡족한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아구탕 지리가 담백하고 맛이 좋습니다. 물컹한 부분도 맛있고요. 육고기와 닭고기는 잘 못 먹지만, 생선은 거부감 없이 먹는 건 태어나 자란 곳이 부산이라 그렇겠지요. 새벽이면 자갈치 시장에서 사온 싱싱한 고등어와 갈치가 아침 밥상에 흔하게 오르곤 했으니까요. 언젠가 엄마를 모시고 아구찜을 먹으러 가긴 했으나, 이렇게 담백한 지리탕을 처음 알게 되었으니 반가운 일입니다. 이다음엔 친정 엄마도 모셔와 맛보여 드리고 싶은 그런맛입니다.

 

얼만큼의 정성이 들어가야 이렇게 만족스러운 맛을 낼까 싶은 마음은 항상 시詩로 이어집니다. 한 그릇의 음식에도 이렇듯 지극한 정성이 들어갈진대, 더욱 땀과 정성을 기울여 글을 지어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웁니다. 고마우신 스승님의 따스한 한 말씀처럼, 무겁지 않게, 글쓰기가 마음을 나누며 사랑하는 일이 될 수 있도록. 그 안에서 자유와 평화를 누리기를 원합니다. 태초에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 주신 말과 글. 그 속에 치유와 위안과 쉼이 있음을 봅니다. 마음으로 그리워하던 것은 글이 되고, 글은 길이 되어 좋은 만남으로 이어질 테지요.

 

아구탕의 담백한 국물을 한 술 한 술 뜨면서, 어머니들 살아 오신 짭쪼롬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선생님은 문득 어! 그 말 그대로 세 줄 정도만 적으면 좋은 시가 되겠다고 하십니다. 그 전에도 느꼈지만, 선생님은 가수이기 이전에 시인입니다. 이어지는 자녀 이야기, 이문세 님의 노래. 이문세 님의 노랫말은 전부 다 시詩라는데에 서로가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지요. 7080이 된 예전의 노랫말들은 대부분이 시詩로 다가오곤 하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님의 시노래와 동요로 알게 된작곡가 백창우 선생님과의 음악 활동 등 이야기는 한 술 한 술 따뜻하게 잔잔히 이어집니다.

 

 

 

 

 

<어느 날의 기도> 시집을 넘겨 보시더니, 대뜸 어! 홍순관 선생님이 부르신 시詩다. 대번 알아 보시며 반가워하십니다. 세상이 넓다지만, 땅 속에선 하나에 뿌리를 둔 서로가 씨실과 날실로 얽히고 섥혀 좁다랗기도 하다는 사실을 세삼 확인합니다. 흔히 말하는 부처님 손바닥, 그리고 하나님 손바닥 안에 손금입니다.

 

언젠가부터 제 가슴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답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 만나서 얘기를 나누고 싶다. 제 둘레를 돌아보면 저는 섬입니다. 가족과 주위에 사람은 많아도 마음을 나눌 벗은 귀한. 갈 곳 없는 고립된 섬이 나였습니다. 먼저 꿈을 이루신 분들의 소식을 접할 때면 왠지 부러우면서도 저에겐 오르지도 못할 태산처럼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황량한 빈 들 같은 제 마음에도 소망의 씨앗 한 알 심겨진 후 소망은 점점 더 안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처음엔 그토록 몰랐을까요.

 

밤이면 내 몸은 둥그런 우물이 됩니다. 예수의 마음 앞에 하염없이 무너지는 나를 봅니다. 메마른 빈 들에 조금이라도 촉촉함이 있다면 그건 예수를 내 가난한 가슴에 품고서 흘린 눈물 만큼일 테지요. 좁다란 섬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잡초처럼 무성해지는 소망. 그 사이에서 차나무 순처럼 한 줄기 삐죽이 오르는 맑고 또렷한 한 마음이 보입니다. 묵묵히 내가 원하는 그 일을 당장에 해보자 하는. 하루에 한 걸음만 떼자.

 

돌이켜 보면 소망의 씨앗은 내가 임의로 만들어낸 자의적인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압니다. 내게 주어진 감동도 나로부터 된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어쩌면 자의적으로 만든 소망이었다면 이미 제 풀에 꺾였거나 지워지고 말았을. 혹, 내 속에 어떤 간절함 또는 좋아함이 생기거나 누군가의 모습에서 닮고 싶다는 소망이 생긴다면, 그 소망이 시간이 갈수록 또렷해진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령님. 또는 본성, 불성, 영성으로도 말할 수 있는, 하나님인 본 마음 자리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라는 사실입니다.

 

내면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고요히 안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단지 주시는 그 소망의 씨앗을 무심히 내려버려두지만 않는다면요. 또한 주신 소망 한 알 가슴으로 품는 일이 내가 기울일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 될 테지요. 무딘 일상에 흐려질세라, 외부의 현란한 정보에 묻혀 사라질세라. 그럴 때 제가 기울일수 있는 최선은. 고요한 가운데 들려오는 내면의 작은 소리에 귀를 열어 놓는 일입니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오늘 시노래 가수 박경하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렇듯 서로에게 따뜻한 만남이 될 수 있었던 끈 중에 하나가. 서로의 가슴 속 깊은 곳에 흐르는 소박하고 따스한 그 하나의 울림이 만났기 때문 일 테지요. 저 역시 내면에서 들려오는 그 음성에 늘 귀를 열어 두었듯이. 짧으나마 제가 본 선생님도 내면의 강물이 흐르는 중에 들려오는 그 작은 소리에 귀를 열어 놓고 살아오셨기에. 그런 마음으로 보여집니다.

 

귀를 열어 놓는다는 것은 나를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가장 아름답게 온기를 나누는 사랑의 행위가 될 테지요. 고요한 가운데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만나는 침묵에 가만히 기대어 귀를 기울입니다. 오늘 이렇게 하나의 소망이 우리의 아름다운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소중한 마음으로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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