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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숙의 글밭/하루에 한 걸음 한 마음

기다리는 만남

by 한종호 2019. 11. 24.

신동숙의 글밭(5)

 

기다리는 만남

...

걸레로 방바닥을 닦으시던 친정 엄마가 주말에는 이모님댁에 다녀오마 하십니다. 이모가 계신 진주 단성까지는 버스를 두세 번 갈아타고도 족히 세 시간은 걸리는 거리. 이어서 하시는 말씀이 주무시지 않고 당일날 돌아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작년에 방문하신 얘기를 꺼내십니다. "두 노인네가 내가 왔다고 평소에는 틀지도 않는 기름 보일러를 때는데, 내가 마음이 미안해서 똑 죽겠고", 이번에는 주무시지 않고 그냥 오시겠다며 선언을 하십니다.

 

친정 엄마도 올해 74세를 맞이 하셨으니, 하루 동안에 오고 가는 버스를 여섯 시간이나 넘게 타신다는 것은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는 녹록치 않은 여정입니다. 게다가 아침마다 당뇨약도 드시니까요. 토요일 오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걸었더니, 가는 중이라고 하십니다. 아마도 새벽부터 설치셨을 겁니다. 그래도 모르니 주무시고 오란 말을 남깁니다.

 

그 옛날 꽃가마를 타고서 시집을 가셨다는 이모는 엄마보다 연세가 많으십니다. 조카들 결혼식이나 집들이, 친지들이 모인 잔칫상 앞에서도 조용히 듣기만 하시고, 당신 앞에 놓인 젖가락으로 뭘 잡수시는 모습을 본 기억이 거진 없다시피한 이모님. 점잖아도 너무나 점잖은 우리 이모님. 그런 이모가 엄마는 답답하다고 하십니다. 제가 볼 때는 엄마도 착하디 착해서 답답한데 말이지요.

 

제가 시집을 오기 전에도, 딸 자식 책상 위에 있는 건 휴지조각 하나 덜렁 버리는 법 없이 아끼셨더랬습니다. 그 마음은 꼭 저를 아끼는 마음으로 다가왔고요. 지금도 저녁이면 주방 렌지 위에 따끈한 국 냄비가 있는 것도 철마다 김치가 떨어지지 않는 것도 찬바람이 불면서 양념 게장이 냉장고에 있는 것도 우렁이 각시 같은 엄마의 손길인 줄 압니다. 때론 아침에 퍼 둔 찬밥이 사라진 것도 전날 먹다 냉장고에 밀쳐둔 남은 찌게나 쉬기 직전의 반찬, 골골한 사과가 사라진 것도 보이지 않는 엄마의 손길인 줄을 압니다. 제발 그러지 마시라고 해도 여전하십니다. 표 내지 않는 속 깊은 사랑. 보이지 않는 사랑입니다.

 

 

 

 

밤 8시가 조금 넘어서 전화가 옵니다. "집이다." 이모님댁이냐고 여쭈니, 벌써 집에 오셨다고 하십니다. 기어이 선언대로 하신 겁니다. 어떻게 시간이 되시더냐고 물으니. 두 시간 앉아서 얼굴 보고 얘기하고 왔다. 하십니다. 간다는 여동생을 못가도록 이모는 붙잡으시고. 그런 언니를 기어이 뿌리치시며 돌아 나오셨을 엄마의 모습이 아릿하게 그려집니다.

 

2시간의 만남. 잠시 차 한 잔 마실 동안의 만남을 위해서, 가는데 세 시간, 오는 데 세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달려가는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때로는 서로의 삶이 녹록치 못해 무리다 싶으면서도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있는 만남에는 거리와 시간은 연결 다리가 될 뿐. 거리의 길고 짦음이 문제가 되지 아니하고, 마주한 시간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그런 만남.

 

저에겐 그런 만남이 누가 있을까 비추어봅니다. 움직이기보다는 제 자리에 머물러 기다림에 익숙한 제 모습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나 되짚어 봅니다. 아주 어릴 적, 일 하러 나가신 엄마를 밤 늦도록 기다리던 유년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언제나 엄마의 하루는 새벽부터 먹이를 구하러 날아다니는 참새처럼 바쁘게 시작됩니다. 커다란 다라이를 힘에 부치도록 머리에 이고 비탈길을 따라 장에 가시면서 몇 마디 말씀을 씨앗처럼 툭툭 던지십니다. 나쁜 짓 하지마라. 착하게 커라.

 

나쁜 게 무엇인지, 착한 게 무엇인지, 말 뜻도 도통 알 수 없는 나이. 놀이터에서 뛰어 놀다가 하나 둘 아이들이 집으로 가고. 혼자 남으면 뒷산 바위산을 찾아 오릅니다. 널다란 바위에 앉아서 장난감 같은 집들, 마을을 내려다 봅니다. 바로 눈 앞엔 하늘이 커다랗습니다. 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알 수 없는 허기가 채워지던 그 충만감. 그러면 툭툭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산길을 노래를 부르며 산토끼처럼 내려옵니다. 토끼풀로 팔찌도 만들고, 긴 풀로 여러 개 우산도 접다 보면 금새 마을입니다.

 

온종일 엄마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마음이 그대로 자라서. 누굴 만나러 어딜 찾아가기보다는 기다림에 익숙한, 먼저 연락하는 일이 좀체 없지만, 먼저 연락을 해오는 지인들은 이제는 압니다. 그런 제 둘레에는 선한 벗과 고마운 지인들이 있습니다.

 

저녁답 밀려 드는 쓸쓸함에 때론 가슴 싸 하지만, 제겐 홀로 있는 그 공백을 견디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돌이켜 보니, 하늘이었습니다. 어릴 적 허기를 가득 채워주던 하늘. 그 하늘이 그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이미 엄마로부터 익숙한 보이지 않는 사랑 말이지요. 혼자 있어도 누군가를 찾아 나서기보다는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나무를 바라보거나 그냥 잠을 자거나, 고요하게 하늘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니까요. 그리고 이따금 주어지는 드문 만남은 그만큼 더 서로에게 충만한 만남이 되니까요.

 

제가 살아가는 모습이 나무와 닮았다면. 진리에 뿌리를 내리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서, 하늘을 우러르는 삶이기를 소망합니다. 잔가지에 깃드는 생명들 소중하게 품을 수 있는 사랑이기를 하늘로부터 배웁니다. 제겐 말씀 한 알이면 하루를 넉넉히 살아갈 수 있는 양식이 되니까요. 엄마가 장에 가시며 툭툭 던져 주고 가신 말씀 씨앗이 하늘을 닮은 제 가슴에 심겨져 그대로 자란 것처럼. 말씀 한 알 가슴에 품고서 그리움이 무르익도록 기다리는 마음이 제겐 삶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제 마음에 임재하실없는 듯 계시는 하나님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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