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생(生)이라는 바닷가에서도

by 한종호 2019. 10. 28.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98)

 

 생(生)이라는 바닷가에서도

 

부산 해운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고층 건물들이었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바닷가 주변에 늘어선 고층 빌딩들은 어깨를 맞대고 서 있었다. 그런 모습은 인간의 능력으로가 아니라 무지로 다가왔다. 자연의 위력을 너무 쉽게 무시하고 있다 여겨졌다. 바다에서 저처럼 가까운 곳에 저처럼 높고 큰 건물을 지어도 되는 걸까 싶었다. 사람의 예측을 뛰어넘는 자연의 위력 앞에서 인간의 능력과 생각이 너무나 보잘 것 없음을 깨닫게 될 때, 그 때 치러야 할 대가가 얼마나 큰 것일까 두렵기까지 했다.

 

지방 목회자 세미나 둘째 날 아침, 아내와 함께 해변을 산책했다. 휴가철이 한참 지나서인지 해변은 한산했다. 맨발로 모래 위를 걷는 사람, 운동 삼아 달리기를 하는 사람, 서로의 손을 잡고 장난을 치는 연인들이 드문드문 보일 뿐이었다.


해운대의 모래는 해마다 강원도 하천에서 사다가 붓는다고 한다. 갈수록 모래가 줄어들기 때문이라는데, 그 또한 고층 빌딩과 무관하지 않다고 했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의 흐름이 달라져서 모래가 쌓이는 대신 쓸려나간다는 것이었다.  


 

산책을 하던 중 모래 위에 찍힌 발자국을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니 사람들의 발자국과 새들의 발자국이 섞여 있었다. 신발 자국도 있고, 맨발 자국도 있고, 한 마리인지 여러 마리인지 새들의 발자국도 찍혀 있었다.

 

 

 

 

누가 먼저 발자국을 남겼는지는 알 수 없다. 사람의 발자국과 새들의 발자국이 동시에 찍힐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차이를 두고 같은 자리를 지나간 흔적이 같은 자리에 남았을 것이었다.


모래 위에 찍힌 서로 다른 발자국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먼저 발자국을 남겼다고 그가 그 땅의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은 발자국을 찍었다고 주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바다 물결이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모든 발자국은 지워질 것이다. 어느 누구의 발자국이 따로 남지 않을 것이다.
 
어찌 그것이 바닷가 모래뿐이겠는가. 우리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아 어느 날 모든 것이 사라질 것이다. 홀연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이야 내 것과 네 것을 구분하고, 내 것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얼굴을 붉히기도 하지만, 어느 날 그 모든 것이 소용없어지고 말 것이다. 해운대 해변 모래 위에 찍힌 저 서로 다른 발자국들처럼, 생(生)이라는 바닷가에서도 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