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 정직한 성찰!
    감사합니다.

    이진구 2019.10.06 04:52
  • 그나마 거기에 희망이 있지 싶습니다.

    한희철 2019.10.06 06:41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0)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운

 

누군가의 설교를 듣는 일은 내게 드문 일이다. 바쁜 탓이기도 하고, 혹시라도 누군가를 흉내 내거나 비교하려는 마음을 스스로 차단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심사가 못된 탓이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듣게 된 설교가 있다. 새문안교회 이상학목사의 설교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4)–사랑과 정의 사이에서’(마태복음 5:20)라는 제목이었다. 자신이 속한 교단 안에서 일어난 M교회의 담임목사 세습 문제를 다루는 설교였다. “성경적 설교를 기대하시는 분들은 용서해 달라”며 시작했지만, 내게는 더없이 성경적으로 들렸다. 목소리를 높이는 법 없었지만 위선과 탐욕과 무지의 견고한 벽을 깨뜨리는 설교이기도 했다.

 

 


 

설교자는 이번에 벌어진 일이 1938년에 교단에서 결정한 신사참배보다도 더욱 더 치욕적인 결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왜냐하면 신사참배는 압력에 의해서 결정을 했지만, 이번 결정은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는 결정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설교를 끝까지 들으며 듣는 내내 아프고 부끄럽고 고마웠다. 설교 말미에 언급한, 동기 목사 이야기도 그랬다.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는 동기 목사가 노숙자에게 전도지와 빵을 건넸단다. 노숙자가 전도지에 있는 교단 마크를 보더니 “어? 이거 세습한 교회가 속한 교회 아니야?” 하며 목사에게 빵을 집어 던졌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소개하며 설교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게 이 이슈가 가지고 있는 무게감입니다.”


아프고 부끄럽지만 고맙다는 마음이 든 것은 그런 정직한 성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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