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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대뜸 기억한 이름

by 한종호 2019. 10. 3.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78)

 

 대뜸 기억한 이름

 

지난주일 2부 예배를 앞둔 시간이었다. 예배실 앞에서 교우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안내를 보던 권사님이 찾아와선 예전에 단강에 계시던 분이 오셨다고 일러주었다. 누굴까, 누가 이곳을 찾았을까, 아무도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에 나타난 두 사람, 누군지를 대번 알 수 있었다. 최일용 집사님과 아들 안갑수였다. 단강을 떠난 지가 20여 년 되었으니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그만한 세월이 지나갔지만 대뜸 두 사람을 알아볼 수 있었고, 이름도 금방 떠올랐다. 집사님은 말투도, 웃으면 두 눈이 감기는 모습도 여전했다. 허리가 약간 굽은 것과 집사였던 직분이 권사가 된 것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저만치서 집사님을 본 아내도 다가와 대뜸 집사님을 얼싸 안았다. 첫 목회지인 단강에 부임을 한 뒤 첫 심방을 위해 단강을 찾은 아내는 최일용 집사님 집에서 잤다. 결혼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것이 도리라 여겨졌다. 집사님은 그때의 일을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우리 사모님이 애기였을 때 내가 옆에 데리고 잤어. 자식들이 사 준, 한 번도 덮지 않은 이불을 사모님께 내드렸지.”


서로를 얼싸안고 등을 두드린 집사님과 아내는 두 눈이 젖어 있었다.

 

 

 

 

1987년 8월 30일, 단강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던 최일용 집사님네 사랑방에서 찍은 사진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은 뒤 목양실에서 두 사람을 만났다. 나눌 이야기가 많았다. 이미 중년 티를 내는 갑수의 말이 고마움으로 와 닿았다.


“아니 목사님, 얼마 만에 만나는데 대뜸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세요?”


기억하려고 애를 쓴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떠오른 이름이었다. 갑수는 사진 한 장을 꺼내 건네주었다. 단강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던 최일용 집사님네 사랑방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잎담배를 널어 말리던 방을 치워내고 그곳을 예배당 삼아 목회를 시작했다. 서너 평 되는 작은 방, 허름한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난 지붕 아래 교우들이 모여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에는 날짜가 표시되어 있었는데, 87년 8월 30일이었다. 같은 해 3월 25일에 창립예배를 드렸으니 첫 예배를 드리고 5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에 찍은 사진이었다.

 

경림, 순림, 미영, 갑수, 종근, 김영옥, 이음천, 지금순, 김을순, 이하근, 최일용… 사진 속 얼굴을 보자 대뜸 떠오르는 이름들. 우리 삶에는 세월과 상관없이 잊을 수 없는 이름들이 있는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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