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도 될 것, 있으면 좋은 것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2. 13. 11:39

이종연의 아기자기(6) 

없어도 될 것, 있으면 좋은 것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나는 "한 명의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살림이 필요하다"고 말하겠다.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물건이 많아도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 게다가 요즘은 뭐든 '국민' 자를 붙여 파는 모양새다. 국민 모빌, 국민 치발기, 국민 바운서, 국민 아기띠, 국민 빨대컵, 국민 유모차, 국민 범보의자. '국민 육아용품'의 세계는 이토록 넓다. 실제로 아기 키우는 집에 가 보면 '국민' 자 들어가는 물건 하나씩은 있다. 그러니 우리 아기에게도 없어서는 절대 안 될 필수 아이템 같고, '좋으니까 많이들 사겠지' 하는 생각에 남들이 많이 사는 브랜드 제품에 솔깃해지기도 한다.

이루를 7개월쯤 키우다 보니 나도 이 정도 알게 된 것일 뿐, 겉싸개와 속싸개도 구분하지 못할 만큼 나는 육아용품 준비에 서툴렀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뭐 그리 필요한 게 많을까 싶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하여 출산 직전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다행히 1년 먼저 아기를 낳고 육아 중인 언니가 이것저것 한 아름 챙겨 주었다. 또 나중에는 리스트까지 만들어 줘서 한결 수월했는데 품목 옆에 적힌 메모야말로 감동적이었다.

유축기 - 내가 줄게 / 아기 손수건 - 내가 줬지 / 배냇 저고리 - 넌 살 필요 없음 / 손톱 가위 - 내가 줄게 / 바운서 - 내가 줄게 

이런 식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아이가 점점 크면서 이것저것 필요한 것은 더 생기기 마련이다문제는 '그게 정말 필요한 걸까?'라는 질문에 내가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는 데 있다. '정말'이라는 부사, 이 녀석이 내 생각을 자꾸 붙잡는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은 뭘까. '정말' 필요한 것의 기준은 뭘까. 사실 내 대답은 주로 '없어도 된다'이고 남편은 '있으면 좋다'이다. 서로 생각이 다르니 물건 하나 사는 데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시작은 아기띠였다. 여기저기서 얻은 아기띠만 네 개였으니 나는 당연히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편은 얻어 온 아기띠들이 너무 낡고 불편하다며 '국민 아기띠'라 불리는 제품을 사고 싶어 했다. 몇 달을 고민하는 사이 이루가 커 버렸다. 그러자 남편은 아기띠 대신 힙시트를 사자고 했고 외출할 때 주로 아기를 안는 남편의 허리를 보호한다는 명분이 추가돼 결국 우리는 힙시트를 (현금을 가장 덜 쓰는 방식으로) 구매했다.

그 외에도 하나 살라치면 주로 내가 딴지(?)를 걸어 아직도 사지 못한 물건들이 남편의 (이루를 위한) 위시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그중에는 수면조끼(하나 있는데 하나 더 있었으면 한다), 아기띠 워머, 유모차 그리고 무려 자동차도 있다.

그런데 얼마 전 후배가 선물한 이루 옷을 대하는 내 태도를 보며 '없어도 된다'는 내 생각을 곰곰 돌아보게 됐다. 무척 예쁜 원피스였다. 빨리 빨아서 입혀 보고 싶을 정도로. 그러다 돌아보니 어라, 지금까지 이루 옷이라고는 내복밖에 사 준 게 없었다. 그리고 오늘 가계부를 열어 살펴보니, 지난 7개월 간 이루 물건을 사는 데 들어간 돈은 기저귀값 50만 원을 더해 70만 원이 채 안 됐다.

감사하게도 주위에서 물려받은 게 많고(정말 많다) 선물도 많이 받아서 큰 부족함 없이 지내고 있기는 하지만, 이루한테 돈을 안 써도 너무 안 쓴 것 같아 좀 미안했다. 생존(?)에 필요하기에 두말 않고 사는 것 말고 이루에게 좋은 것, 예쁜 것도 사 줄 수 있어야 하는데 '필요'라는 말에 매여 이 아이를 의무적으로 키우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루를 키우는 우리 부부를 편하게 해 줄 만한 걸 사면 거기서 생기는 에너지로 이루를 더 사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아이가 최고인 양 뭐든 다 사 주려는 마음은 없지만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대충 키운다'고 하는 말 속에 혹시 최선을 다해 키우려 하지 않는 게으름이 숨어 있는 건 아닌지, '없어도 된다' 싶던 것들을 선물받을 때 지금처럼 헤벌쭉 좋아하는 건 모순은 아닌지 반성도 됐다. 어쩌면 '필요한 것'만 겨우 살 수 있었던 내 어린 시절을 몸이 기억하고 이루도 그렇게 키우려 했던 건 아닌가 하는 슬픈 생각도 잠깐 들었고.

그렇다고 남편의 위시리스트에 있는 물건들을 바로 사자고 할 건 아닌 것이, 여전히 8개월 차에 들어선 이 딸에게 있어야 할 것과 없어도 되는 것을 구별하는 건 내게 어려운 숙제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취향과 선호가 생기는 나이가 되어서도 부모가 그걸 구별할 능력이 없다면, 그건 부모가 될 능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호들갑 떨며 키우고 싶지 않은 만큼 궁상 떨며 키우지 말아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2월이 가기 전에 중고 범퍼 침대 하나 장만해야겠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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