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희철의 '두런두런'/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당구를 통해

by 한종호 2019. 9. 7.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283)

 

당구를 통해

 

여러 종목의 스포츠를 좋아하고 몇 몇 종목들은 즐기며 살아왔지만, 아직도 젬병인 종목이 있다. 당구다. 갓 대학에 입학했을 무렵, 당구는 젊은이들의 해방구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이유 때문에 당구를 피했다. 몇 몇 친구들과 우리라도 그러지 말자고 하며 피했던 것 중의 하나가 당구장 출입이었다. 그런 뒤로도 당구를 접할 일이 없어 당구의 룰도 잘 모르고, 큐대를 어찌 잡는지도 잘 모른다.

한국의 당구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전국에 있는 당구장 수가 2만 2630개(2017년 기준)로 세계에서 가장 많고, 하루 이용자만 160만 명으로 추산이 된단다. 요즘은 당구를 TV로 중계하는 일도 많아져 큰 관심이 없으면서도 지켜볼 때가 있는데,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기 그지없다.

 

 

 

 

 

 


당구 종목 중의 하나인 스리쿠션은 큐로 수구(手球)를 쳐서 제1 적구(的球)와 제2 적구를 맞히는 동안 당구대 모서리인 쿠션에 세 번 이상 닿아야 하는 게임(자료를 보니!), 게임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신기한 것은 어떻게 공이 갈 길을 알고 저렇게 칠까 싶기 때문이다. 당구대 위에 공이 지나갈 수 있는 선은 수없이 많을 터, 그런데 선수들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선을 대번 찾아내어 공을 그리로 보내는데, 그것도 힘을 조정하여 보내고 있으니, 당구를 모르는 내가 보기에는 묘기도 그런 묘기가 없는 것이다.

 

며칠 전 당구 중계를 보다가 우연히 인상적인 장면을 보았다. 선수가 친 공이 서로 부딪쳐서(그걸 키스가 났다고 하는 모양이다)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그 반대인 경우도 있었다. 공이 서로 부딪쳐서 실패라고 여겨졌던 상황이 반전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마디로 운이 좋아 성공하는 경우였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되자 공을 친 선수가 상대 선수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짐작하기로는 그것이 당구의 에티켓이 아닌가 싶은데, 내게는 신선하게 보였다. 경기를 하다가 요행히 내가 원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좋아라 티를 내는 것은 예의일 수 없다. 속으로는 좋지만 좋은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그런데 머리를 숙여 인사를 하니, 그것이야 말로 참된 예의다 싶다.

 

살아가다가 생각하지 못한 좋은 일이 생겼을 때는 무조건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대신 주변을 살필 일이지 싶다. 혹 그런 내 모습으로 인해 속상해 할 누군가가 있다면 가만 머리 숙여 마음을 표하는 것이 도리다 싶다. 하지도 못하는 당구를 통해 인생의 한 자세를 배우니, 참으로 배울 것이 많은 세상이다.  

'한희철의 '두런두런' > 한희철의 하루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만치  (2) 2019.09.10
폭우 속을 걷고 싶은  (3) 2019.09.07
일등능제천년암(一燈能除千年暗)  (2) 2019.09.07
폭염이라는 호  (4) 2019.09.06
바위처럼 바람처럼  (2) 2019.09.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