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모와 함석헌, 광활한 정신세계

  • 뜻으로본 한국역사 이책으로 인해 50 여년동안 수구 꼴통이었던 제 생각. 관념. 고정관념 등등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후 유영모 선생님의
    사상도 공부하게되어 더욱 훌륭하신 분이라는 것
    도 배우고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태고적부터 임하셨음을 깨닫게하는 초석이 되는 책이었습니다.

    최명자 2015.02.17 06:41

꽃자리의 사람, 사람, 사람(3)

유영모와 함석헌, 광활한 정신세계

 

우리의 기독교 신앙 역사 속에는 소수의 굵직굵직한 이들이 선두에 서서 미답(未踏)의 경지를 개척해나갔다. 특별히 유영모와 함석헌 선생이 그러하다. 그 미답의 경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 동양인들의 삶과 기독교 신앙을 깊숙이 만나게 하려 했던 점에 있다. 다시 말해서, 서양이 전해준 기독교 신앙과 그 신학 체계를 그대로 받아들여 신주단지처럼 떠받들고 모시려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호흡과 우리의 역사, 우리의 삶을 기반으로 하여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재해석해 들어갔던 것이다.

유영모와 함석헌의 이러한 자세가 언제나 옳았다고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이러한 시도는 우리 자신의 현실에서 기독교 신앙으로 다가가는 능력을 길러나가는 데 있어 매우 귀중한 자산이 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이해와, 아프리카 흑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독교 신앙의 이해는 사뭇 다르다. 미국인들의 신앙이라고 해도, 1백 년 전의 신학 체계와 오늘의 신학체계는 또한 너무나 달라져 있다. 초기 산업화 단계에 있었던 사람들의 생활과, 오늘날의 삶이 제기하는 문제는 대단히 다르기 때문이다. 로마제국 당시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들은 이른바 헬레니즘 문화 속에 살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던 것은 따라서 그리스 철학이었다.

신앙도 그러한 각도에서 사고하고 받아들였으며, “주일(主日)”마저 전래의 안식일에서 이들 로마제국의 종교적 습속이었던 태양절과 관련이 있는 일요일(Sunday)로 대치되었다. 태양의 자리를 예수 그리스도가 차지하게 될 정도로 이들의 정신세계는 급격한 변화를 맞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삶의 현실과 기독교 신앙을 만나게 한 결과였다. 성탄절마저도 로마제국의 천문학적 사고에 기반을 두고, 동지(冬至)가 끝나는 시점을 잡아 정해졌다. 하여, 비록 로마제국의 문화와 결합한 기독교 신앙이지만 그 신앙이 주려 했던 생명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고, 그들의 삶에서 가장 익숙한 형태를 취하여 이들의 마음에 다가갔던 것이다.

복음서의 경우에도 우리는 그러한 면모를 볼 수 있다. 유대 종교의 정신적 전통이 강한 지역에서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려 했던 마태 공동체는 구약의 족보를 기점으로 나사렛 예수를 설명하려했던 것과는 달리, 그리스 철학의 전통에 익숙한 요한복음은 이들이 잘 알고 있는 ‘로고스’의 개념을 중심으로 기독교 신앙을 설파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신앙을 전하려고 할 때에도, 아이들의 사고와 경험의 세계를 통해서 비유적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아이들은 기독교 신앙의 의미를 깨우치기가 어렵게 된다. 설교 또한 사람들의 구체적인 현실과 경험의 세계와 만나지 못하면 그 신앙적 메시지는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가 되고 만다.

한마디로, 그 복음의 뿌리가 내리고자 하는 땅의 조건에 맞추어 그 복음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열매를 맺고자 하는 것이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로 시작된 성서일지라도, 우리말을 통해서 여과된 의미는 달라지기도 하며, 또 같은 말이라도 그 구체적인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성서를 읽는 이에게 새롭게 다가가기도 하는 것이다.

유영모와 함석헌 선생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조선 땅에 살고 있는 백성들에게는 그렇다면 기독교 신앙은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이냐?” 하는 질문을 안고 평생을 살았던 것이다. 이 질문은 참으로 당연한 것이며 마찬가지로 우리들로서도 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적지 않은 비신자들이 기독교 신앙에 다가가려 하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그건 유대인들의 역사 아니냐? 그들의 신앙 아니냐? 그게 왜 나와 관계가 있는가?”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다. 아브라함, 이삭, 모세 등등의 이름이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괜히 남의 다리만 긁지 말고 아예 우리 자신의 역사나 충실한 사상, 전통에 더 깊이 눈을 떠야 하지 않는가라는 힐난마저 한다.

하여, 우리는 자연스럽게, 수천 년 전의 히브리인들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후 그와는 전혀 다른 풍토와 정신적 자산이 있는 동양인, 보다 구체적으로 우리에게는 어떻게 역사하시는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궁해질 때, 우리는 수입된 종교사상에 매달리는 민족적인 혼마저 없는 이들로 여겨질 수도 있는 것이다.

동양정신+기독교사상=종교다원주의(?)

유영모와 함석헌 선생은 바로 이 기독교 신앙을 우리 자신의 삶 속에서 힘 있게 다가갈 수 있는 정신적 자양분을 동양정신의 맥에서 발견하고자 했던 것이다. 특히 함석헌의 노자(老子) 연구는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여겨 노자의 생각과 나사렛 예수의 언행을 깊이 연결시켜 사고하는 방식을 추구했다. 그래서 노자적인 사고가 무의식적으로 삶에 스민 동양인들의 심성에 가장 알맞게 다가갈 수 있는 기독교 신앙의 내용을 정리해내고자 그토록 애를 썼던 것이다.

인위(人爲)에 사로잡히지 않고 무위(無爲)의 도(道)에 따라 인간의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려 했던 마음은 오늘날에도 우리들의 심성 깊숙이 존재하고 있다. 억지로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살아가려는 정신적 욕구는 신앙인이나 비 신앙인 모두에게 무의식화 되어 있는 동양인들의 정신적 논밭이다. 함석헌 선생은 바로 이 논밭을 개간하여 기독교 신앙이 이에 뿌리를 내려 열매 맺기를 소망했던 것이다. 이 점이 자칫 오해되면, 종교다원주의의 논란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하여, 그의 시도는 마치 요한복음이 당대의 그리스 철학적 사고에 젖어 있던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뜻을 전하고자 로고스의 개념에서 출발하여 이를 바탕으로 신앙의 세계를 풀어가려 했던 노력과 흡사한 것이다. 따라서, 함석헌 선생은 기독교의 이단이 아니라, 기독교의 선교영역을 보다 넓혀 나간 선각자이다.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자산을 내어버리지 않고 이를 적절하게 밝혀 기독교 신앙과 만나게 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은 유대인들의 민족종교라고 배척하던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정신, 그 신앙의 세계를 열어주려 했던 것은 우리에게 남긴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점에서 그의 사상과 족적을 되새겨 본다면, 우리는 그에 대한 오해도 접고, 그가 못다 한 기독교 신앙의 주체적인 해석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무의식적 심성에까지 뿌리를 드리우는 신앙이 되고자 한다면, 실로 동양정신의 정수에 대한 이해가 밝지 않고서는 기독교 선교는 제한적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이 작업은 우리 모두가 당연히 시도해야 할 바라고 생각한다.

유영모, “우리 모신 디”

다석 유영모는 독특한 인물이다. 그의 정신세계는 기독교, 노자, 불교, 톨스토이 등이 섞여 있으며, 그와 함께 우리말로 철학하는 노력을 부단히 한 선각자다. 훗날 함석헌 선생이 유영모의 ‘씨알’을 ‘씨 ’로 풀어 발전시킨 것은 유명한 일화이나, 함석헌이 정치 현실과 치열하게 마주했던 반면에 다석 유영모는 평생 종교 사상가로 자신을 자리매김한다.

1890년, 그러니까 동아시아가 격변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던 시절 태어난 그는 운명적으로 사상적 융합이 이루어지는 역사적 찰나의 존재가 된다. 15세에 기독교에 입교한 그는 기독교에만 머물지 않고 정신적 여정을 광활하게 펼쳐나가는데, 그에게 노자의 《도덕경》과 톨스토이는 두고두고 영향을 미치는 사상적 뿌리가 된다. 그가 52세 되었던 때, 김교신의 <성서조선>에 자신이 기독교인이 된 지 38년 만에 드디어 자기의 진정한 자아 “참 얼 나”를 깨우쳤다면서, 자기 안에 갇혀 있던 자기 영혼을 우주적 차원에 이르게 했다는 각성을 발표하게 된다.

 

 

이후 유영모의 기독교는 제도 기독교에 머물지 않고 참된 자기를 찾고, 그 참된 자기가 하늘의 영과 하나 되는 길을 모색하는 과정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단지 관념의 소산이 아니라 땀을 흘리고 노동하면서 깨우치는 몸의 철학과 통한다. 농부가 되어 땀을 흘리는 톨스토이의 모습은 유영모에게도 모범이 된다. 간디의 사상도 그에게는 일종의 전범(典範)이 된다.

그래서 유영모는 “이마에 땀 흘리는 노동을 천시하고 노동하는 이를 낮춰 보는 사람은 참으로 못난 사람들이다”라고 단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람이 올바르게 살려면 이마에 땀 흘리고 농사지은 것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덧붙이고는 “권력과 금력으로 호강하겠다는 것은 제가 땀 흘릴 것을 남에게 대신 흘리게 해서 호강하자는 것이니 그 죄악은 여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해서 바른 생각은 바른 노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니, 유영모의 생각은 이렇게 표현된다. “입맛 잃고 진 땀 냄은 모르기론 땅파기믄 무슨 생각 올바르며 말은 어찌 일은 무슨? 우리는 땅 파 물먹고 땀맛 밥힘으로!” 사람이 입맛 잃고 진땀 흘리면 그것이 이미 병든 조짐이니 이때 특효약은 나가서 땅 파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무슨 생각과 일이 바르게 잡히겠는가라는 것이다. 그는 “딛고 서 있는 땅과 몸에서 스며 나오는 땀은 사람들의 입맛을 나게 한다. 땅과 땀이 바삐 돌아가는 것은 우리의 입맛과 밥맛 내는 데에 서로 내기하는 것과 같다. 땅이 우리 밥맛을 더 내 주는지, 땀이 우리 밥맛을 더 내주는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노동과 사상은 그렇게 하나로 결합되어 있으며, 그 흙 속의 물, 땀, 그리고 밥으로 살아가는 정직한 삶이 올바른 생각을 길러준다고 강조한다. 이렇게 유영모는 우리의 노동이 단지 육체의 일로 그치지 않고 사상적 모태가 되는 것을 꿰뚫어 보면서 자본과 노동을 대립시키는 현실을 돌파하는 지점에 이미 다다른 셈이다.

그런 그는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 가운데 진실된 자아의 각성에 이르러 생명의 길로 들어서게 하는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 대목을 읽고 해석할 때 우리는 그가 우리말이 가진 사상성을 최대한 풍부하게 하려는 노력을 보게 되며, 그로써 그런 말을 쓰는 순간 이미 그 사상과 종교적 힘이 우리에게 스며들도록 했던 것을 알게 된다. 가령 이런 것이다.

“임의 부름이 고디에 다다름에 이에 얼김으로 배이시도다. … 한 님의 고디는 우리 때문 비르샤 우리로 하여금 늘 삶에 들어감을 얻게 하소서.”

무슨 주문 같은 느낌이 있을 수 있으나, 이 뜻은 매우 간명하다. 여기서 “임”은 당연히 하나님이며, “고디”는 “곧이 곧대로”에서 알 수 있듯이 어떤 유기체를 연결시키는 바른 지점을 뜻한다. “얼김”은 “얼”과 “김”의 합성어로 성령의 순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영혼이 담긴 기체적 존재라고 하겠다.

그러니 이 대목은, 하나님의 뜻이 결국 그 어떤 진정한 연결점에 도달해서 성령의 역사가 육신의 세계에 펼쳐졌으며 인간과 하나님이 서로 엮어진 그 지점에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다, 대강 이런 이야기가 된다. 이렇게 그의 사상을 펼쳐낸 다석은 결국, 우리 인간이란 하나님을 통해 생명의 참 나를 얻게 될 때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며 그로써 무지에서 깨어나고 자기가 진심을 다해 할 일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다석의 사상 체계 안에서는 기독교의 성령과 석가의 다르마, 노자의 도가 모두 하나로 통하게 된다. 하나님의 얼과 서로 교통하면서 참된 얼나를 얻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성 어거스틴이 “영원한 인간적 불안의 도정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합치되는 지점에 이르게 될 때 영원한 안식이 온다”고 했던 바와 다르지 않다. 다석은 오늘날 성찰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우주적 영의 세계에 대해 선각자적으로 짚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고로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곧 인간의 생명을 지키는 숨쉬기의 대상이다. 하나님의 생명의 얼이 그의 숨 자체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그는 “참 말로 숨 아멘”이라고 말한다. 참 된 말로 숨 쉬는 자에게 아멘은 저절로 열린다는 것이니, 참된 말씀이 갈급한 오늘의 시대에도 여전히 종교적 상상력을 창조적으로 일깨우는 바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다석 유영모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로 표현되는가? 그에게 하나님은 역설적 존재다. “없이 계시는 분”이 곧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정의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대한 표현이고, 그에게 하나님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했듯이 다정한 존재다. 모든 시원(始原)의 보이지 않는 형상이나, 그와 동시에 아버지, 하고 부를 수 있는 관계다.

다석은 그의 나이 84세 때 하나님을 이렇게 부른다. “우리 모신 ㅇ、ㅂ、 디” 무슨 뜻인가? 여기서 “ㅇ、”는 모든 시작의 감탄이 집중되어 있다. “ㅂ、”는 “밝다”의 축약이다. 그래서 만사가 제대로 보이는 것이다. “디”는 “딛는다”에서 알 수 있듯이 단지 관념적 이해가 아니라, 실천, 마음과 몸으로 깨우쳐 행하는 그런 존재의 근원이라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우리의 존재 그 시작과 출발 자체라는 감탄의 대상이자, 그로 인해 만물이 빛을 얻고 제대로 보이며 이를 바탕으로 삶의 실천이 이루어지게 하는 분, 그렇게 다석은 하나님을 불러도 그 존재의 내면과 우리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순전한 우리말로 풀이하게 위해 지극히 애를 썼던 것이다.

그 하나님을 제대로 “ ㅇ、ㅂ、 디”라고 부르자면 세상의 이해와 유혹에 얽힌 제나(自我), 즉 저만 잘난 줄로 아는 그런 자아 가지고는 안 되고 이를 벗어나 하늘의 얼로 가득 찬 “얼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다석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세상에 빠진 내가 미혹에서 벗어나서 뚜렷하게 나서야 한다. 예수는 뚜렷이 하나님을 모시고 태초부터 자기가 모신 아버지라고 불렀다. 나도 이에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얼(성령)의 숨을 쉼으로 뚜렷이 하나님 아들로 사람답게 살겠다는 말씀 한 마디를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다석의 사상을 바탕으로 요한복음을 해석해나간 다석 사상가 박영호는 《잃어버린 예수》라는 책을 통해 제나를 극복하고 얼나를 찾아가는 길을 발견하기 위해 애를 쓴다. 그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세상을 향해 다석이 말한 바를 이렇게 전한다.

“낱동(개체)인 나는 전체인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사람은 완전이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온통(전체)을, 완전(참나)을 알고 싶어한다. 그 온통과 완전이 참나인 하느님 아버지가 되어서 그렇다. 하느님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이 우리의 참 삶인 것이다. … 거짓 나인 제나로 죽고 참나인 얼나로 솟아나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유영모는 그의 평생이 결국 그 자신의 참된 자아에 눈뜨기 위해 진력을 다 했던 세월이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깨우침을 무수한 종교적 탐방을 통해 이루려고 했으나 종국적으로는 그 모든 출발점에 서 있는 자신이 중요한 것을 인식하고 그 자신과 하느님이 하나가 되는 길을 터득하는 사상적 지도를 만들고자 했던 셈이다.

다석 유영모의 사상은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오늘날 종교적 갈등과 소통 불능의 지점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던질 수 있다고 본다. 어떤 특정한 종교적 굴레에 묶이지 않고 어느 종교나 깨우침에 도달하려는 곳을 향해 그는 공통의 인류적 노력을 깊이 주시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사상적 경로에 우리말이 갖고 있는 힘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노력했다. 그건 그가 민중적 사고를 하고자 함이었고, 우리말 속에 담긴 조상들의 사상적 역량을 다시 발굴하고 그것을 오늘의 상황에 되살리고자 했던 것이다.

<우리말로 철학하기> 운동도 펼쳐지고 있는 터에, 우리말로 신학하기도 이쯤해서 깊게 다져 생각해볼 일이다. 다석 유영모가 ‘씨 ’의 모태를 일군 존재라면, 그의 사상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볼 경우 다시 찾아 써 볼 수 있는 말과 사상과 소재가 풍부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유영모는 자신 안에 쌓여 있는 말의 회로를 따라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섰고, 그걸 창조적으로 갈고 닦아 다석 사상의 기초를 마련했다.

그런 다석의 자세는 이런 대목에서 한결 뚜렷하게 이해된다.

“우리는 마음이라는 성화로(聖火爐)에 영원한 생명의 불을 태우느냐 못 태우느냐를 늘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생각을 불사르는 것이고, 그것으로 정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말이 터지게 된다.”

이미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을 반복하는 것은 암기하는 것에 불과하다. 또는 교리적으로 자신을 세뇌하거나 사고를 공식화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창조적 발상을 억제하고 참된 자신과 하나님의 만남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방식이다.

그런 면모에서 보자면, 다석 유영모는 우리에게 자신에게 이미 있는 말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뚫어낸 존재이다. 조선의 역사와 풍습과 삶과, 사유방식이 깃든 말에 하늘의 얼김이 배이면 그것이 하늘의 얼김을 받은 몸이 된다. 그 몸이 토해내는 말은 어느새 하늘말씀이 되어 우리의 숨결로 변모한다. 그 숨결이 가득 찬 세상은 생명 세상이 될 수 있다.

다석 유영모를 외면하지 말고 그의 속뜻을 깊게 읽어나가면, 의외로 무진장한 보석이 발견된다. 우리의 사상이 고갈되어버린 듯한 이 시대에 다석은 그래서 반가운 존재 아닌가?

함석헌, 빈들에 외치는 소리

“나는 빈들에 외치는 소리, 아니 건드리는 것이 없고, 못 들어가는 틈사리가 없고 간 데마다 닥쳐 싸워 이겨 울고 져서 우는 하늘 땅 사이를 달리는 바람 소리. …살로메냐! 살로메냐! 썩어질 살로 내 가슴 매려느냐? 독사의 살로 내 목을 베려느냐? 시집 밑천 삼진 못할 내 목 잘라 쟁반에 들고 춤추는 오그라진 속아, 네 눈에 원수 갚음의 독살 소용이 없느니라. 나의 죽음이 쏜 빛살이 이미 네 살을 뚫어 꿰지 않았느냐? 나는 영원의 빈들에 메아리를 울리는 죽지 않는 외치는 소리”(함석헌, ‘나는 빈들에 외치는 소리’).

스스로를 “빈들에 외치는 소리”, “영원의 빈들에 메아리를 울리는 죽지 않는 외치는 소리”로 못박은 함석헌은 일제의 황량한 시대를 거쳐, 독재와 분단의 시기를 통해서 우리 역사에 거칠 것 없는 “하늘의 야성(野聲)”을 울린 이였다. 그는 20세기가 시작하는 첫 해인 1901년에 태어나 1989년, 88세의 장수를 누리면서 혹독한 세월을 때로는 폭풍처럼, 때로는 우박처럼 우리의 영혼을 몰아치고 울리며 살다 간 사상의 거인이었으며, 역사의 맥을 짚어내는 장엄한 시(詩)로 혜안(慧眼)의 빛을 우리의 어두웠던 정신에 비춘 민족 시인이기도 하였다.

그는 허연 수염과 하얀 두루마기 자락을 펄펄 날리면서, 고대 동양의 ‘선인(仙人)’과 같은 풍모로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살아 움직이는 예언자로서 우리의 역사에 우뚝 선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가 나타나면, 그 자리는 온통 존경의 마음이 우러났고, 그가 발걸음을 딛는 자리는 역사의 진전이 이루어지는 뜨거운 현장이 되었다. 그로 말미암아 성서는 하늘의 뜻을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읽어나가는 책이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들의 존재는 그 내면에 완성의 힘을 가진 <씨알>이 되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노자와 같은 고대 동양의 지혜는 새로운 육성을 가진 깨우침이 되었고 편협했던 기독교 신앙에 우주와 인간을 온통 하나로 아우르는 힘을 갖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그가 일구어놓은 정신사의 흔적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1935년경, 그가 서른 다섯의 역사 선생으로 정주 오산학교의 교편을 잡았던 시절,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초고로 내놓는다. 이 글을 그의 신앙동지들과 함께 조국의 역사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찾기 위한 노력의 성과로 작성했던 것이다. 그는 이 글을 발간하지 못한 채 해방된 조국의 현실을 맞이하게 되는데, 1950년 성《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책으로 서울에서 출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은 더욱 연조를 더해가면서 1965년 다시 본래의 제목인 《뜻으로 본 한국역사》가 되어서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

책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조국의 희망 일깨워

함석헌을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알리게 된 저서인 이 책은 믿음의 눈으로 본 조국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이 민족에게 어떤 계시와 메시지를 주시려는가를 깨우치려 했던 것이다. 사실 이 책은 무슨 전문적인 역사저술도 아니고, 엄격한 역사학 방법론에 기초한 학술서적도 아니었다. 조선의 역사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던 시절, 젊은이들에게 오로지 자신의 민족사를 알게 하려는 일념 하나와, 그저 사실을 엮어나가는 역사책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 민족에게 두신 뜻까지 알게 하려는 마음이 이 책을 탄생하게 했던 것이다.

이 책은 그리하여, 함석헌의 사색의 열매였다. 평안도 시골구석의 한 초라한 민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선생이 자신의 혼과 열을 다하여 쏟아낸 이 글은 그러나 이후 무수한 젊은이들에게 조국의 역사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고 심오한 뜻과 새로운 희망을 품게 하는 책이 되었던 것이다. 1930년대는 어떤 시대였는가? 그야말로 세계적인 공황이 휩쓸고 이에 따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일제가 우리나라를 병참기지화 하여 중국을 향해 총칼을 들이대었던 때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온 민족이 절망하고 갈 길을 잃은 채, 새로운 시대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바로 이 때, 젊은 함석헌은 우리 민족의 고난의 경험이 도리어 우리를 새롭게 살려 내게 된다는 것을 깊이 깨우치고, 그 영감을 사람들에게 나누었던 것이다. 고난이란 짐이며, 그래서 조국의 역사를 외면하고 있던 젊은이들은 이러한 그의 역사해석에서 뜨거운 정신과 만났고, 그 정신의 감화로 잠자던 영혼이 일어나 역사의 현실을 감당하는 존재가 되어 갔던 것이다.

여기서 그는 모든 역사의 주체를 ‘씨알’로 규정하고 이 존재가 역사의 밭에 뿌려져 하나님 나라를 일구게 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나사렛 예수의 비유를 관통하는 하나님 나라를 향한 변화의 현실을 의미했고, 당당한 자아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민족사를 개간하는 주체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 씨알들이 자라나고, 힘을 모아 새로운 민족의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을 꿈꾼 그는 그래서 이 씨알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세력들에 대해서는 가만있지 않았다. 장준하와 손을 잡고 벌였던 <사상계>를 통한 싸움은 바로 이 씨알의 힘을 억누르려 했던 권세와 감연히 맞선 일이었다. 1950년대와 60년대를 걸쳐, <사상계>는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호흡과도 같은 출판물이었고, 암울했던 시대를 일으켜 세우는 새벽의 뜨거운 함성이었다.

그가 <사상계>에 발표하여 정치적 논란과 탄압을 불러일으킨,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함석헌이 역사의 현실에서 어떤 메시지를 온 몸으로 전하려고 했는지 일깨우는 글이라고 하겠다. 오랜 일제의 속박 속에서 당장의 생존이 급급했던 우리 민족, 그리고 다시 그 일제의 악령을 되불러온 독재의 사슬 속에서 우리 민족은 생각하며 사는 여유와 힘을 잃고 만 것이었다. 그는 권력의 명령과 지시, 그리고 족쇄에 갇혀 마치 무뇌(無腦)적 존재처럼 살게 된 것을 탄식했다. 사람이 아니라, 인형과 기계가 되어가고 있던 민족의 현실 앞에서 그는 용기 있게 “아니다!”를 외쳤고, 그 힘을 민족사의 전진을 위한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일에 진력을 다하였다.

성서독법 훈련으로 동양고전 새롭게 해석

그가 시대의 이단자가 되어 하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려는 의지를 그는 <대선언>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들어라, 오 들으라.

하늘이여 땅이여.

그 사이에 소용돌이쳐 오르는 인간의 회리 바람이여.

내 즐겨 이단자가 되리라.

비웃는다. 겁낼 줄 아느냐.

못될까 걱정이로다.

앞으로 밖에 모르는 몰아치는 영이 이를 명한다.

내 감히 자신 있어 지어먹는 맘에서랴,

내 속에 분명 딴 뜻을 나는 듣노라.

나의 나직하장에는 거슬리는 뜻을.

그런데 그는 정치적 이단자로서만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평생에 그가 믿고 고백해온 기독교에서도 이단자적 위치를 마다하지 않았다. 대선언의 시 그 다음 구절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내 기독교에 이단자가 되리라.

참에야 어디 딴 끝 있으리라.

그것은 교회주의의 안경에 비치는 허깨비뿐이니라.

기독교는 위대하다.

그러나 참은 보다 위대하다.

함석헌의 정신은 워낙 광대하여 기존의 기독교 신학의 틀 안에 가둘 수 없었고, 기존의 교회주의적 고백으로는 성이 찰 수 없었다. 기독교가 둘러 처 놓은 울타리를 깨고, 그는 하나님의 육성에 담겨 있는 참이 무엇인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도처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영이 하나님의 마음에 닿아 있으면, 참은 보인다는 그 신념이 그를 기독교의 이단자가 되게 하였으나, 종교간의 대화의 문을 열어 놓았고 서구에서 수입해온 기독교적 관점으로 멸시하며 지내온 동양정신의 깊이를 여는 역할을 감당하게 하였다. 이것은 실로, 그 동안 잠자고 있던 정신의 보고(寶庫)를 새롭게 발견하는 일이었고, 기독교 신앙으로 훈련되고 자란 정신의 힘으로 영감(靈感)의 차원이 달라진 그의 눈이 우리들에게 보여준 새로운 세계였다.

그의 노자 강좌의 첫 대목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노자를 하게 되었다고 그러는데, 왜 노자 공부를 하나? …종교란 종교는 다 동쪽에서 나서 서쪽으로 갔어요. …서양문명이 발달하면 모든 것이 다 자동적으로 잘 풀려 나갈 줄 알았단 말이예요. 그러나 그것은 이미 착각이라는 것이 다 밝혀졌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떡하지?” 동양, 거기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단 말이예요. …종교란 밑뿌리가 다 하나일건데, 발표형식이 다를 뿐인데. …공자는 어려운 때니까, 실질적인 지식을 주자, 실천도덕이 중요하다 그랬는데 노자의 생각은, 그러나 그것이 그렇게 해서 어찌 되느냐? 근본에서 잘못되어서 그러는데, 이제 그 근본을 다시 찾아 돌아가기 전에는 어찌 그럴 수 가 없지 않느냐? 보다 더 생각이 깊은 거예요. …영적으로 해석한다할까, 정신적 해석이라 할까? 그런 견지에서 나는 하는 거니까.”

결국 그가 추구하려 했던 것은 모든 인간사의 밑바닥에 관통하고 있는 정신적 문제의 근본을 바로 보자는 것이었고, 동양의 정신 속에 이미 있는 보고를 그대로 지나치지 말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자신을 혁파하여 새롭게 하자는 것이었다. 주목되는 것은 그의 이러한 동양고전의 해석이 과거 자구를 붙들고 구태의연하게 해석했던 한문학(漢文學)과는 달리, 그 뜻을 총괄적으로 살펴나가는 성서독법의 훈련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서양에서 들여온 기독교의 깊은 뿌리를 어루만지다가, 동양정신의 뿌리까지 가게 되었고 이 양자간의 대화를 통해서 하늘의 뜻을 캐묻고 대답해나갔던 것이다. 이러한 그의 자세는 어둠에 갇혀 있던 인간의 정신세계에 맑은 생수를 부어나가는 일이었고, 그래서 우리의 마음의 크기를 우주적 규모로 만드는 일이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도처에서 찾아 이를 이루는 일과 통했던 것이다.

이제 기독교는 유영모와 함석헌 선생이 걸어갔던 사상적 자취를 되돌아보면서 우리 자신의 편협함과 배타성을 극복하고, 광활한 정신세계의 확대를 이루어 기독교가 이 시대에 보다 큰 힘으로 호소력을 갖고 인간의 삶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한종호/<꽃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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