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민영진의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발을 가리우다

by 한종호 2019. 7. 12.

히브리어에서 우리말로

 

발을 가리우다

 

 

각 언어마다 완곡어법(婉曲語法)이란 것이 있다. 이 말이 유래된 그리스어 유페미아(euphemia)는 재수 없는 말이나 듣기에 유쾌하지 않은 말을 피하고 대신 길조를 지닌 낱말을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완곡어법에서는 모호하거나 우회적이거나 덜 구어체적인 용어를 쓰는 것이 특징이다.

 

구약성서에서 완곡어법이 사용되는 예 가운데 하나가 신체의 부분이나 그것들의 기능을 묘사할 때이다. 예를 들면 발을 가리우다라는 표현이다. 모압 왕 에글론의 경우,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이르되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개역개정> 사사기 3:24), 또 사울왕의 경우, “길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개역성경> 사무엘상 24:3).

 

<공동번역>발을 가리우다라는 표현을 두 곳에서 다 뒤를 보다로 번역하였다. “발을 가리우다는 표현은 용변(用便)을 보는 것을 뜻한다.

 

 

 

우리말에서도 이런 경우에는 직접적인 묘사를 피하고 완곡어법을 쓴다. <공동번역>뒤를 보다역시 똥 누다를 점잖게 일컫는 말이다. 이것을 한자어로 변을 보다라고 하거나 토박이말로 뒤를 보다라고 하면 웬만큼 불쾌한 냄새가 가신다는 기대에서일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발() 역시 음부(陰部)나 나체를 가리키는 완곡어법으로 쓰인다. 출애굽기에 보면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돌칼로 자기 아들의 포경을 자르고 그것을 모세의 발에 대었더니사경을 헤매던 모세가 다시 살아났다는 기록이 있다(출애굽기 4:24-26). <개역>은 십보라가 아들의 양피를 모세의 발 앞에 던졌다라고 번역하였고 <개역개정>모세의 발에 갖다 대었다고 번역하였다. 여기서 모세의 남경(男莖)”을 일컫는다.

 

이사야서에도 보면 그 날에는 주께서 하수 저쪽에서 세내어 온 삭도 곧 앗수르 왕으로 네 백성의 머리 털과 발 털을 미실 것이요 수염도 깎으시리라”(<개역개정> 이사야 7:20)는 구절이 나오는데, 여기서 발 털은 발이나 다리에 난 털이 아니라 음부 주위에 난 털을 뜻한다.

 

<공동번역>발 털거웃이라고 표현하였다. “거웃의 사전상의 일차적 의미가 음모(陰毛)”인 것을 보면 거웃을 쓴 <공동번역>은 완곡어법을 피하고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훈몽자회(訓蒙字會)에서 턱 밑 거웃 수(), 입술 거웃 자(), 뺨 거웃 염() 등의 설명을 보면 거웃 역시 본래는 턱이나 코 밑이나 뺨에 난 털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결국 음모를 거웃이라고 한 것도 본래는 완곡어법의 한 표현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민영진/전 대한성서공회 총무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