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출산?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2. 6. 22:12

이종연의 아기자기(5) 

평화로운 출산?

 

내 주위에는 조산원에서 출산한 사람들이 제법 많다특히 부천에 있는 조산원이 압도적이다. 이루도 그곳에서 태어났고

조산원이 어떤 곳인지 모르던 시절, 잡지사 기자로 일할 때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이라는 책을 출판사가 보내 준 적이 있다히프노버딩은 최면 요법을 이용한 자연 출산법으로 그 책을 읽으면서 출산이 평화로울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책 영향이었을까일반 산부인과에서 출산하기가 꺼려졌다. ‘제모, 회음 절개, 관장임산부의 3대 굴욕이라 불리는 이 세 가지도 싫었지만, 수술대 위에서 불편한 자세로 누워 출산해야 하는 걸 내 마음이 견뎌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출산의 경험이 있는 친언니들은 진통이 오면 그런 건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했지만 그 이야기를 나누던 때는 진통이 아직 뭔지도 모를 때였고 그러니 나에게는 생각할 겨를이 충분했다

실제로 임산부 검사를 위해 집 근처 산부인과를 방문했을 때 의사에게 저 세 가지를 꼭 해야 하느냐고 물어봤었다그 의사는 자신은 의사로서 만약을 대비해 안전한 조치를 사전에 취할 의무가 있다고 얘기했다. 에누리 없는 확신에 찬 그 대답이 내게는 온전한 믿음을 주지 못했는데, 남편과 함께 찾아본 다큐멘터리에서나, 외국에서는 최근 회음 절개를 하지 않는 추세라는 글들을 꽤 봤기 때문이었다

산부인과 대신 선택지로 떠오른 곳이 조산원이다. (위의 책을 지인에게 선물했는데 우연히 그녀는 지금 저 책의 저자가 원장으로 있는 산부인과에서 조산사로 일한다그래서 그곳에서 출산하는 것도 잠시 생각해 보았지만 비용을 듣고 바로 생각을 접었다.) 

조산원은 간호사 면허와 조산 면허를 가진 조산사가 출산을 관장하는 곳으로, 이루가 태어난 조산원은 분만 대기와 분만 그리고 원하는 경우 산후조리까지 한 방에서 이루어진다. 또 산모가 편안한 자세로 분만할 수 있고, 산모 곁에서 호흡을 도와주고 정서적 응원도 해 주는 둘라 역할을 남편(가족)이 할 수 있는 등 여러 면에서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아이를 맞을 수 있다.

그럼에도 확실히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정하지 못한 이유는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꽤 오래 전이기는 하지만 조산원에서 태어난 신생아가 응급 처치를 하지 못해 죽은 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머뭇거리게 된 결정적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생각해 보면 산부인과에서도 태어나자마자 의료사고로 하나님 품에 안기는 아기들도 분명 있는데 산부인과가 더 안전하리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어영부영 시간은 흘렀고 임신 35주차가 되어서야 남편과 나는 조산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고 그곳에서 출산하기로 결정했다결정적 이유(?)는 아니었지만, 통유리창이 있는 거실 같은 공간이 꽤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출산 후 며칠간 조산원에서 조리를 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수시로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예뻤고, 바람결에 흩날리는 나무가 참 싱그러워 보였다.)

반드시 조산원에서 출산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 건 출산 2시간 전이었다양수가 새서 가진통이 시작된 지 35시간이 지났을 때였다자궁문이 거의 열렸는데도 진진통(출산이 임박했을 때 오는 진짜 진통)이 오지 않자 원장님은 양수막을 터트려 보자고 제안하셨다그래서 진통이 오면 다행이지만 그때도 진통이 없으면 산부인과로 가야 한다는 얘기와 함께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전에 막연하게 느꼈던 산부인과의 차가움을 곧 현실에서 느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미치자 꼭 조산원에서 출산하고 싶어진 것이다

만약 그곳이 산부인과였다면, 기꺼이 35시간을 기다려 주었을지 잘 모르겠다게다가 나는 소량이라지만 양수마저 샜으니 감염의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출산을 앞당기는 촉진제를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가 의사의 조치를 반대할 명분은 당연히 없었을 거고.

다행히 양수막을 터트리자마자 진진통이 시작돼 2시간 만에 출산이라는 드라마가 끝이 났다임신 기간 동안 '팔복아(태명), 너의 시간에 너의 힘으로 세상에 나오면 좋겠구나라고 자주 건넨 그 바람을 팔복이는 2014710일 오전 10시에 들어주었다우리 부부와 함께 밤을 새며 상태를 살피고 기다려준 원장님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인지도.

... 반전(?) 같지만 나는 출산이 평화로울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못 된다. 가급적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최대한 자연의 순리에 따랐고, 또 아이를 믿고 기다렸기에 자연스러운 출산이긴 했지만 고통은 극심했다. 출산 후에도 내 가슴에 안긴 아기를 보며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이 컸지만 찢어진 회음부를 마취 없이 꿰맬 때는 출산 때보다 더 아파 비명을 질러댔다. 조리 기간에 샤워도 못하고 더운 방에서 에어컨도 없이 지내야 하는 것도 괴로웠고, 한여름밤 웽웽거리며 날아다니는 모기에게 아기가 물리기라도 할까 봐 노심초사하는 것도 짜증났다.

고통이 있어야 아기가 태어날 수 있고, 여름은 원래 더운 계절이고 모기가 있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어느새 편리에 익숙해진 내 몸은 (인위적인 조치를 취하는 산부인과에 가기는 싫었으면서도) '자연스러움' 그 자체를 '평화'로 받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조산원의 장점을 늘어놓기 조심스럽고, 평화로운 출산 운운하는 것이 나에게 어울리지 않음도 잘 안다.

다만, 한 가지 나누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다출산의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즉 이루가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제 머리를 힘껏 내밀었을 때 나는 할 수만 있다면 그 머리를 다시 배 속으로 넣어 달라 하고 싶었다너무 아팠다그래서 원장님께 소리쳤다. “원장님 너무 아파요. 제발 어떻게 좀 해 주세요.” 원장님은 세상 다시없을 부드러운 손길로 내 몸을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힘들지? 어떻게 해 줄까?” 

다시 내게 공을 넘기신 저 지혜로운 한마디에 나는 엄마가 될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렇지. 누구도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거였지. 내가 힘을 내야겠다.’ 그 긴박한 순간에 침착하고도 단호한, 그러면서도 따스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직관에 의존해 느낀 대로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뭐든 다 해 줄 수 있다고 말하는 자신감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사람그 용기마저 용기를 내라고 말하기보다 스스로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사람이 아닐까

둘째 생각은 없으니 다시 조산원에 갈 일은 없겠지만, 왠지 조산원 통유리창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달빛을 안고 싶은 밤이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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