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집과 욕망의 울타리를 걷어내면…

고진하의 마이스터 엑카르트와 함께하는 ‘안으로의 여행’(6)

내 아집과 욕망의 울타리를 걷어내면…

 

우리가 실로 우리 자신의 깊이를 알기만 한다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사이가 없을 것이다.(매튜 폭스)

어느 해 여름 북원주에 있는 고산(高山) 저수지로 친구와 밤낚시를 갔다.

고요와 정적에 휩싸인 밤의 저수지는 소음과 사람으로 붐비는 도시에서 살던 친구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어둠에 잠긴 산 속에서는 밤 뻐꾸기가 한가로이 시간의 엿가락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울고 있었다. 소쩍새며 부엉이도 밤의 고요와 정적을 깨우고 있었는데, 낚시터에 똬리를 틀고 앉은 우리의 마음을 금세 고즈넉하게 가라앉혀 주었다.

친구는 그야말로 ‘낚시꾼!’이었다. 후레시를 켜면 고기들이 도망간다고 불도 밝히지 않고 어둠 속에서 낚시 가방을 열어 능숙하게 낚시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대낚 끝에 푸른 빛깔의 형광 물질이 묻은 찌를 달고 낚싯대를 물에 넣었다 뺐다 하기를 되풀이했다. 아마도 열 번 이상 했을 것이다.

밤낚시를 거의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궁금해서 물었다.

“도대체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수심(水深)을 재고 있지. 메기가 표적인데, 메기는 얕은 물보다는 깊은 데를 좋아하거든. 그래서 물이 얼마나 깊은가를 재고 있는 거야.”

친구는 그렇게 한참 동안 수심을 재다가 장소를 옮겨야겠다고 했다. 물이 너무 얕다는 것이었다. 어둠 속에서 낚시 도구를 챙겨 자리를 옮기는 일이 번거로울 텐데도 친구는 개의치 않았다. 저수지 북쪽으로 자리를 옮긴 친구는 다시 수심을 재기 위해 낚싯대를 집어넣었다 뺐다 하는 짓을 되풀이했다. 그렇게 움직이는 친구를 보고 있다가 문득 나는 머릿속으로 뭔가가 번개처럼 스쳐갔다.

하나님도 이 낚시꾼처럼

내 영혼의 깊이를 재보겠다고 하실 지도 모르겠군!

추가 달린 낚싯줄을 쓱 집어넣었다가

너무 얕으면

‘여긴 건질 게 없겠군!’하시며

다른 영혼을 찾아 가시겠지.

캄캄한 어둠 속에 눈에 불을 켜고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은 친구를 보며 나는 갑자기 온몸이 으스스해졌다. 그가 마치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하나님이라도 되는 듯!

잠시 후 낚싯대 끝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친구가 소리쳤다.

“드디어 메기가 입질을 시작했어!”

입질! 얼마나 오랜만에 듣는 말인가.

한데, 과연 나는 하나님이 낚시 바늘을 던지면 입질을 할 만한 수심에 놓여 있는 것일까.

 

 

* 자기 포기

실로, 자기를 여의지 않은 채 수천 편의 시편을 낭독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여의고 “안녕하세요, 하나님!”하고 한 마디 하는 게 더 낫습니다.

자기 포기 없이 해외 순례를 하는 것보다는

자기를 포기하고 내딛는 한 걸음이 낫습니다.

순례의 길을 떠나는 제자들에게 한 종교적 스승이 말했다.

“이 쓴 조롱박을 가지고 가거라. 그리고 이 쓴 조롱박을 반드시 거룩한 강에 담그고, 모든 거룩한 성전에 가지고 들어가도록 하여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제자들이 순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스승은 그들이 다시 가지고 돌아온 쓴 조롱박을 삶아서 신성한 음식으로 내놓았다.

쓴 조롱박으로 만든 음식의 맛을 본 스승이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상도 하지? 거룩한 물과 성전들도 이 쓴 조롱박을 달게 만들지 못했군!”

- 앤소니 드 멜로의 《일 분 헛소리》

쓴 조롱박이 거룩한 성수에 담근다고, 거룩한 성전에 가져다 놓는다고 달콤해지겠는가? 마찬가지로 마음에 인간에 대한 증오, 다른 종교인에 대한 편견과 미움을 가진 사람이 성스런 예배당을 찾는다고 하나님이 기뻐할 만한 달콤한 존재가 되겠는가?

우리의 길잡이는 자기를 먼저 ‘여의라’고 권면한다. ‘여의라’는 말은 사랑하는 딸을 시집보내듯이 ‘멀리 떠나보내다’란 의미가 있다. 그렇게 ‘자기’를 멀리 떠나보낼 때, 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버릴 때, 하나님으로 둘러싸일 것이라고 길잡이는 말한다. 둘러싸인다는 것은 하나님이 울타리가 돼주신다는 것이다.

내 아집과 욕망의 울타리를 스스로 걷어내면, 하나님이 내 울타리가 돼주신다는 것. 이처럼 울타리 쳐 주시는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 놀라운 사랑의 신비를 경험해 보고 싶다면….

* 고요한 마음을 바치라

하나님은 철야와 단식과 기도와 모든 형태의 고행을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오로지 안식만을 거들떠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요한 마음을 바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고요한 마음을 바칠 때만

하나님은 영혼 안에서 신비스럽고 신성한 일을 이루십니다.

우리가 ‘생각의 폭풍’을 잠재우지 못하고 바치는 예배, 기도, 단식, 봉사 등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신적 본성이 ‘안식’이고 ‘고요’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런 본성을 눈치 채지 못하고 피조세계의 것들을 바쳐 그분 눈에 들고 싶어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 눈에 들고 싶다면, 하나님의 눈으로 우리의 속사람을 살펴야 하리라.

분은 이미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계신 그분은 생각의 폭풍에 휩싸인 우리의 겉 사람과 달리 안식을 누리고 계시고, 고요를 누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 안에서 이미 안식과 고요를 누리고 계신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있다면, 그분이 우리를 통해 ‘신비스럽고 신성한 일’을 이루신다고!

고진하/시인, 한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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