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이종연의 '아기자기' 2015. 1. 31. 08:58

이종연의 아기자기(4)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생명을 맞이할 생각을 하면 설레면서 동시에 낯설고 두려웠다. 전에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몸의 변화와 열 달 뒤 경험한 출산도 그랬지만 무엇보다 남편과 이서만 지내던 공간과 시간 그리고 삶 자체에 새로운 존재가 더해져 언제까지일지는 알 수 없으나 꽤 오래 으로 지내야 하는 것이 제일 낯설 것 같았다.

그래서 가만가만 배 속 아기(라 부르기엔 아직 너무나 어렸고 태명조차 짓지 못했던 때에)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편지 쓰듯 써 내려간 그 글은 아가야로 시작해 이루가 태어나기 이틀 전에 우리에게 허락된 만남의 시간이 다할 때까지 서로 사랑하자꾸나!”로 끝난다. 얼마 전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그 글들을 들춰보고 있는데 남편이 힐끗 보더니 이런 걸 다 썼느냐며 놀라 했다.

주로 소소한 일상을 나눌 때가 많았다. 평소 회사 앞까지 바래다주고 출근을 하던 더없이 자상한 남편이 휴무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출근길에 동행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네가 아들이라면 그런 아빠 닮기를 기도하고, 네가 딸이라면 후에 그런 남편 얻기를 기도한다. 물론, 그런 성품을 가진 딸이 되는 것도 감사한 일이겠지하는 식으로 말이다.

 

아마 내 몸 상태에 관해 제일 많은 이야기를 나눈 듯하다.

오늘은 몹시 나른하고 피곤하구나. 그래도 나에게 불끈불끈 힘을 주는 너의 태동에 무척 고맙다!”

사람은 무릇 제 한 몸 건사하기 위한 건강한 신체를 지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사실은 무능한 사람에 가깝다.”

“8개월 들어 손발이 붓고 쥐가 난다. 이런 변화도 10주 만 지나면 끝난다. 임신의 시기마다 찾아오는 신체의 변화는 참으로 영묘하다.”

어느 날에는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했다.

너는 너로서 존재하고 성숙하며 살아가야 한단다. 어쩌면 이 각박한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누군가 나의 존재 의미를 알려주면 좋겠고, 내가 십대 시절 그러했듯 누군가 내 미래를 점쳐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겠지만, 모든 가능성과 길을 열어 주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으로 그 어려운 질문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듯하다.”

네가 언젠가 어디선가, 어떤 일을 하게 될 때, 그 일이 너를 기쁘게 할뿐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을 기쁘게 하는 일이면 좋겠구나!”

읽고 있는 책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우리 삶은 내일을 알 수 없음의 연속이다. 지금 읽고 있는 모모에서 말하는 대로라면, 미래가 과거가 될 때에만 오늘이 존재할 수 있다고 했던가. 우리에겐 끝없는 미래와 과거만 존재할 뿐이지. 그 미래를 긍정으로 볼지 부정으로 볼지는 전적으로 나의 선택이겠지. 너와 함께 살아갈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볼프의 책을 보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하나님이 내게 값없이 베푸셔서 내가 존재한다고 믿고 고백한다면 바로 그 하나님이 내게 생명을 맡기셨으니 나도 그분이 베푸신 사랑의 ‘1/우주만이라도 베풀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강신주는 인문학의 정신은 미래의 타자를 배려하는 정신이라고 말한단다. 우리 사회 구성원에게 그런 정신이 없다는 게 비극이지. 그러나 바로 그러한 단 한 사람이 없지는 않기에, 나도 또 내 남편도 살아가고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또한 그런 사람들이 되기를 갈구하면서, 변화는 그 작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서.”

때로 미안한 마음으로 무거운 숙제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다.

언젠가 4·3을 배워야 할 때가 올 거야. 그때 외면하지 않고 잘 배워준다면 참 고맙겠구나. 너의 인생을 주무를 마음은 조금도 없지만 너와 이런 주제로 소통할 수 있다면 참 감사할 텐데.”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 중에 부자는 없었다. 아마 그랬다면 이 정부의 대처 방안이 조금은 달라졌을 거다. 팔복아(태명). 세상에는 부자도 있고 빈자도 있단다. 그가 얼마만큼 가졌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면, 그것처럼 비참한 인생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나 우리 정부는 정말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본다.”

고백하지만,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서 혹은 모성애가 남달라서 그랬던 게 절대 아니다. 입덧이 오고, 살이 붙고, 배가 나오며, 심지어 어느 순간에는 뻥뻥 차는 발길질까지 몸으로 느껴야 했던 나는 오롯이 로서 살아온 지난 시간들과는 차원이 다른 그 변화들이 몹시 낯설었다. 그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이다가도 뜬금없이 찾아오는 긴장과 우울, 걱정 등을 느끼는 나 자신을 위로 혹은 격려하며 마음을 다잡고 싶었던 거다. 피하지 않기로 한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작디작은 생명과 절대 좁힐 수 없을 서른두 해라는 절대 시간의 간극을 줄여 보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나는 열 달을 견딘(?) 것 같다. 모든 게 처음인 경험들 앞에서 선방했다고 할까나. 지금도 나는 육아의 세계에서 자주 헤맨다. 어떻게 키워야 할지 몰라 머리를 내젓고, 졸리면 어서 잘 것이지 왜 우느냐며 짜증도 내고.

그 고비(?)를 넘기는 나만의 방법 중 하나는 임신했을 때처럼 일기장을 펼치는 것이다. 이런저런 글을 끼적이면서 (주로 이루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다시 로 설 때 엄마가 될 힘을 얻는 것이다. 육아일기를 써 보라는 제안을 받고 남편에게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가 머뭇거리다가 이내 동의한 것도 내가 이런 사람임을 알았기 때문일 거다. (사실 남편의 일기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래서 다시 얘기하지만 이루야, 부디 아빠 같은 남편을 만나거라. 너를 너답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사람 말이야. 뜬금없는 결론인 듯하지만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살 때 우리 모두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이종연/IVP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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