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

<사랑하지 말아라>

by 한종호 2018. 4. 26.

<사랑하지 말아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인 줄 몰랐습니다. 

밑 빠진 둑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탓이 어디 있다고 보느냐?” 


“그야, 있다면 저한테 있겠지요.” 


“옳은 말이다만, 정직한 대답은 아니구나.” 


“……” 


“탓이 너한테 있다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말은 무슨 말이냐? 

네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밑 빠진 독 같아서 그래서 힘들다는 얘기 아니냐?” 


“그렇군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려운 까닭은 사랑받는 사람에게 있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다. 

그래서 ‘탓’이 너한테 있다는 말이 옳다고 한 것이다.”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입니까?” 


“잘못한 것 없다.” 


“그런데 왜 이토록 힘들지요?” 


“너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했다.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 


“아니지요.”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사랑이 힘든 것이다.”

“예?” 


 “사랑은 누가 누구에게 주거나 누가 누구한테서 받는,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은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무엇이 아니라 무엇을 주고받으며 살아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런 사랑을 누구에게 주고 또 받으려 하니, 그것은 마치 사람이 땅을 어깨에 메고 다니려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거늘, 어찌 힘들지 않겠느냐? 하면 할수록 힘들 것이다.”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루아침에 사랑을 깨칠 수 있겠느냐? 조급하게 굴지 말아라, 지금 잘하고 있다.” 


“……” 


“봄이 되면 땅이 새싹을 땅거죽 위로 밀어올리느냐?” 


“그건 아니지요. 그렇지만 땅이 없으면 어찌 새싹이 돋겠습니까?”


“사랑이 그와 같다. 하지 않음으로써 하는 것이 사랑이다.”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는 하겠습니다만, 정말이지 어렵습니다.” 


“지금 잘하고 있다지 않았느냐? 

하늘이 모든 것을 덮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바꿔놓거나 젖혀두거나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하늘과 같다. 

땅이 모든 것을 싣는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싫어하거나 밀쳐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땅과 같다. 

해와 달이 모든 것을 비춘다는 말은 그 어느 것도 등지거나 외면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랑은 일월과 같다.” 


“그렇지만, 분명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데도 그를 덮어주고 실어주고 감싸주어야 합니까?” 


“전에 내가 들려준 ‘집 떠난 아들 이야기’를 기억하느냐? 

둘째 아들이 아비의 집을 떠날 때 아버지는 그의 가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또한 그의 귀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함께 있는 것이다.” 


“선생님의 집 떠난 아들 이야기에서, 아버지는 아들을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몸은 떠나 있었지만 마음은 늘 아들 곁에 있었다. 만약에 아버지가 억지로 아들을 집에 붙잡아두거나 아들을 따라서 도시로 갔다면, 그렇게 해서 아들을 자기 곁에 두거나 아들 곁에 있기를 고집했다면, 그것은 아들의 ‘출가’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요, 따라서 아들은 끝내 귀향의 기쁨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 


“지금 누가 네 눈에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기억해 두거라, 그는 그렇게 ‘잘못된 길’을 갈 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 세상에는 아버지 품 아닌 데가 없어서, 어느 누구도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지 않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걷는 길은 짧게 보면 출가행(出家行) 또는 귀가행(歸家行)으로 두 길이 서로 반대 방향이지만, 그러나 길게 보면 출가는 귀가의 씨앗이요 귀가는 출가의 열매일 뿐이고 따라서 모든 길이 결국 귀로(歸路)인 것이다.” 


“……” 


“누구를 사랑하려고 애쓰지 말아라, 

그냥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말없이, 소리 없이, 흔적도 없이, 아무 바라는 것도 없이 그와 함께 있어라, 

거듭 말한다.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그 곁에 없는 듯 있는 것이다. 

하늘이 땅을, 땅이 초목을, 일월이 만물을 대하듯이 그렇게,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이아무개 지음, 『지금도 쓸쓸하냐』중에서

'이현주의 '최후의 심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존경하는 재판장 각하!  (0) 2016.07.07
위대한 종님  (0) 2016.05.11
당신이 누구요?  (0) 2016.04.21
불공평한 하나님  (0) 2016.04.05
하나님 맙소사!  (0) 2016.03.2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