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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

나오미, 노년에 진정한 어머니가 되다(2)

by 한종호 2015. 8. 30.

이종록의 모정천리〔母情天理〕(33)

 

나오미, 노년에 진정한 어머니가 되다(2)

 

 

1. 룻은 베들레헴에 도착해서, 보아스 밭에서 곡식걷이를 돕고 이삭을 주우면서 시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시어머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오미가 특별히 할 말이 있는 듯하다. 여기서도 본문기자는 나오미가 룻의 시어머니라는 사실을 일부러 밝힌다. 이제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인데도 불필요해 보이는 말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런 집요함은 룻과 나오미가 어떤 관계인지, 즉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사람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어떤 사람인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룻은 나오미가 자기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시어머니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그리고 이 며칠 동안 시어머니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묻지는 않았지만, 무슨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심각한 것만은 분명했다. 하지만 룻은 시어머니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렸다. 시어머니가 지금 말씀하지 않는 것은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야기할 때가 되면 자기에게 이야기해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3. 그런데 나오미가 이제 생각을 다 정리한 모양이다. 그래서 룻을 부른다. 나오미는 룻의 두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위해서 쉴 곳을 찾아보려고 한다. 이제는 내가 너를 위해서 안식할 곳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니?”(룻기 3:1) 나오미는 룻이 안식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여자들은 때가 되면 결혼해서 남편과 한집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이것을 ‘안식’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 룻은 남편을 잃고 고향을 떠나서 이국땅에서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니 안식을 완전히 잃은 것이다. 이것은 정상적이지 않다. 불행한 일이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성경기자가 나오미를 굳이 룻의 시어머니라고 밝히는 까닭은 이것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4. 그리고 룻에게 시어머니가 있다는 것은 룻이 결혼했다는 것인데, 남편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결혼이 무효화된 상태이다. 그러면서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기 때문에 룻의 신분이 어정쩡한 상태이다. 나오미는 이것을 정리해주려는 것이다. 결혼했으면서도 안식할 곳을 잃고 사는 룻에게 다시 안식을 주어야겠다는 것이다. 나오미는 룻을 보아스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 일을 반드시 성사시키기 위해 나오미는 계책을 세우고, 룻에게 그대로 실행하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룻은 보아스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다.

 

5. 룻이 아이를 낳은 날, 나오미를 찾아온 동네 여인들은 축하의 말을 한다. 그들은 나오미를 찾아와서 그저 “축하 한다”고 인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하는 축하 인사가 의례적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지 모른다. 그들은 룻이 낳은 그 아이로 인해서 나오미가 앞으로 어떤 힘을 얻을지를 상세하게 나열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그 아이가 나오미의 생명을 회복시켜줄 것이라고 말한다.

 

6. 이것은 나오미가 그동안 겪었던 일들로 인해서 기력을 소진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나오미가 남편과 두 아들을 모압 땅에 묻고 희망 없이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던 때를 기억한다. 그가 룻과 오르바를 친정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 하는 말에서 우리는 나오미가 얼마나 처절한 심정이었는지를 느꼈다. 그는 삶의 기쁨과 희망을 다 잃어버린 여인이었다. 그런데 룻이 낳은 그 아이가 나오미에게 다시 힘을 불어넣어서 희망을 갖고 살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오미의 노년을 책임져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 아이로 인해서 나오미는 마라에서 다시 나오미로 돌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 아이는 “이름의 회복자”이기도 하다.

 

7. “당신을 사랑하는 당신의 며느리가 그 아이를 낳았는데, 그는, 당신에게는 일곱 아들들보다 더 낫습니다”(룻기 4:15). 그들은 룻이 시어머니인 나오미를 지극히 사랑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도 룻이 시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을 알 정도면 룻이 시어머니를 얼마나 잘 모셨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룻이 나오미에게 일곱 아들들보다 더 나은 며느리라고 말한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이것을 패러디하면 “좋은 며느리 하나 일곱 아들 부럽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베들레헴 사람들이 룻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한다고 말했고, 룻이 일곱 아들 부럽지 않게 능력을 갖춘 며느리라고 인정했다.

 

8. 베들레헴 여인들의 축하인사(4:14-15)가 끝났다. 긴 축하인사를 받은 나오미는 룻이 낳은 그 아기를 데려와 자기 품에 안았다. 나오미 품에 안긴 그 아이는 참으로 복 받은 아이이다. 동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축하인사를 하고 복을 빌어주었지만, 그 아이와 룻에게도 복을 빌어주었을 것이다. 그 아이는 복의 근원과도 같은 아이이다. 그 아이는 모두에게 기쁨을 주는 아이이다. 할머니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그녀가 겪은 모든 아픔들을 다 잊히게 해줄 아이이다. 그리고 그 아이는 나오미의 노년을 책임져줄 “새로운 고엘”이다. 그 아이의 태어남은 모두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었다. 그 아이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상징이었다.

 

9. 나오미가 손주를 품에 안았을 때,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그녀의 메마른 가슴에 안은 그 아이. 새 생명. 보기만 해도 예쁜 그 모습. “아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옐레드”이다. 이 단어는 1장 5절에 나왔다.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여기서 “아들”은 히브리어로 “벤”이 아니고, “옐레드,” 즉 아이이다. 이것은 말론과 기룐이 아무리 장성해서 장가를 갔다고 해도, 그리고 비록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나오미에게 그들은 여전히 “아이”들일 뿐이었던 것이고, 나오미는 영원히 그들의 어머니였음을 보여준다.

 

10. 죽은 두 아이들을 가슴에 안고 통곡했던 어머니 나오미는 이제 룻이 낳은 아이를 가슴, 즉 죽은 두 아들을 안았던 그 가슴에 안고 기뻐한다. 어떤 사람들은 룻기가 “옐레드”로 시작해서 “옐레드”로 끝나는 대칭구조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대칭이 아니다. “옐레드(들)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옐레드의 탄생”으로 끝나는 더 극적인 대칭이다. 죽음을 넘어서 생명으로 나아가는 대칭인 것이다. 나오미는 그 아이의 양육자가 된다. 그래서 나오미는 다시 진정한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이종록/한일장신대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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