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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오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

대형교회와 브랜드교회, 그 불편한 유사점

by 한종호 2015. 2. 12.

이진오의 건강한 작은 교회 이야기(3)

대형교회와 브랜드교회, 그 불편한 유사점

- 공교회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

 

“건강한 작은 교회 운동”에 대한 오해 중 하나는 이 운동이 그냥 “작은 교회”만을 추구하거나 그냥 “작은 교회”가 건강하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시 글을 쓰도록 하겠다. 또 다른 오해 중 하나는 이 운동이 개교회주의를 부추기거나, 노회/지방회, 교단/총회 등을 불필요하게 여겨 “공교회성”을 무시하거나 무력화 시킨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한 오해이며 오히려 우리는 대형교회가 공교회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건강한 작은 교회 운동”이 주장하는 “건강함”은 교회의 교회됨으로 크게 보면 공동체성, 일상의 제자도, 공교회성, 공공성 네 가지다. 첫째로 건강한 교회는 공동체, 유기체, 가족이라는 것이고, 둘째로 건강한 교회는 신자 개개인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제자로 성경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이며, 셋째로 교회는 지역 사회와 시대적으로 말씀에 따른 공적책임을 다해야 하며, 넷째로 교회는 개교회주의를 탈피해 주님의 몸된 공교회됨 가운데 치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4가지 교회됨을 위해 교회는 “작음”을 의도적으로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중 이번 글은 공교회성에 대해 생각해 보려고 한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통해 고백하듯이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시는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 이를 가톨릭 처치라고 하든 유니버설 처치라고 하든 우리는 “보편적 교회”, “하나 된 교회”를 믿는 것이다. 교회가 하나되고 보편적이기 위해 중요한 것은 치리권이다. 교리에 대해 윤리에 대한 치리권은 공교회에서 주어진 것이다. 개별 목회자나 개별 교회는 열심히 선교하고 사역하면서 자칫 교리적 일탈이나 윤리적 타락으로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할 수 있다. 그것이 인간의 죄성이며, 조직교회의 한계이다. 그래서 공교회의 치리권이 중요하다. 노회/지방회, 교단/총회는 지역교회에 대한 교리와 윤리에 대한 치리권을 가지고 때로는 바른 교리와 윤리가 행해지도록 필요한 내용적, 행정적 지원을 하고, 때로는 바른 교리와 윤리가 지켜지도록 필요한 징계를 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교회를 거룩하게 유지하게 하는 유일한 비결이라는 것을 우리는 교회사 속에서 알고 있고, 그것이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교회됨을 바르게, 굳게 지키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이 공교회성의 훼손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공교회성을 해침을 통한 교리적, 윤리적 타락은 임계점을 넘기고 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어차피 피선교국으로 수 많은 교단/교파가 복음을 전하고 교단/교파가 형성된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교리/윤리적 징계에 순종하지 않고 교단/교파를 인위적으로 나눠 수백 개의 교단/교파를 형성한 것에서 권위의 상실은 시작되었고 공교회성은 상실되었다. 물론, 교리적 차이, 세상 정치에 대한 이념적 차이, 군력에 대한 죄성 등 여러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를 주도한 곳은 대체로 대형교회 목회자들이었다.

교회가 대형화 되면서 대형교회 목회자가 타락해도, 대형교회가 교리적 윤리적으로 부패해도 교단/총회에서 징계를 할 수 없게 되었다. 한 교회가 노회/지방회 보다 더 큰 권력과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대형교회가 수백 개의 교회를 지원하면서 작은 지역교회들이 노회/지방회의 치리를 받기보다 대형교회의 눈치를 보게 된 것이다.

 

 

감리회가 김홍도 목사와 형제들을, 순복음교단이 조용기 목사를, 침례회가 윤석전 목사를, 통합이 김삼환 목사를, 합동이 길자연 목사, 오정현 목사, 전병욱 목사, 정삼지 목사를 징계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저들이 대형교회 목사이기 때문이다. 대형교회는 공교회성을 훼손했고, 그 결과 교회의 거룩성을 훼손해 교리적, 윤리적 타락을 방관하고 부추기고 가속화 시켰다. 거명한 저 목사들이 신자 수 200여 명의 작은 교회 목회자였다면 이미 목사직 면직되거나 제명 되었을 것이다. 현재는 작은 교회와 목회자들도 이런 대형교회와 카르텔을 형성해 비호 가운데 누구도 징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자신들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분립교회를 세운다. 주로 자신에게 목회를 배운 부교역자들을 내보내 분립개척을 하는 것이다. 영락교회가 시초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해외에 세운 교회까지 “영락”을 붙였다. 이를 더 확대한 곳이 여의도순복음교회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아예 자기 교회 이름에 “지성전”이라고 붙였다. 그리고 위성으로, 인터넷으로 본 교회 목사 설교를 중계했고 이를 보면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대형교회를 비판하며 차별성을 두는 것으로 소위 “스타”가 된 스타 목사, 개혁적인 목사들이 교회갱신과 제자훈련을 통해 성장했다. 그런데 이들의 행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온누리교회는 지성전 개념을 세련되게 표현해 “캠퍼스”라고 불렀다. 본 교회 목사 설교를 영상으로 보며 예배했고 헌금은 본 교회로 모아졌고, 심지어 “담임목사”는 “담당목사”가 되었다. 스타 목사들은 자신들의 목회적 노하우를 다양한 목회 세미나를 통해 알렸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훈련된, 익숙해진 목회자들을 선발하거나, 부교역자들을 보내 동네방네 분점/지점식의 지교회를 세웠다.

노회/지방회나 교단/총회가 이들을 징계하기는 쉽지 않다. 전통적인 대형교회든, 스타 목사에 의한 개혁적인 대형교회든 “브랜드화”를 통해 “프랜차이즈화”되었고 이는 공교회성을 무력화 시켰다. 이미 개교회는 노회/지방회, 교단/총회의 징계권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본 교회”의 눈치를 보는 시대가 되었다.

대형교회의 폐해를 지적하며 성장한 스타 목사들, 개혁적 교회들이 대형교회와 동일하게 공교회성을 해치고 있다는 이 불편한 현실이 진실이다. 그럼에도 지금도 포스트 000을 자임하며 그 길을 가고자하는 스타 목사들이 신뢰를 받는 현실은 우리를 더욱 슬프게 한다.

이진오/더함공동체교회 목사, 교회2.0목회자운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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