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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을 지르러 온 불

by 한종호 2018. 10. 17.

불을 지르러 온 불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내가 받아야 할 세례가 있다. 이 일을 다 겪어 낼 때까지는 내 마음이 얼마나 괴로울지 모른다. 내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고 온 줄로 아느냐? 아니다. 사실은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누가복음 12:49-51)

 

“나는 이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나는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예수님, 참 솔직해서 좋다. 누가가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을 그때 얼마나 많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반대에 부딪쳐 괴로워하고 있었을까?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 예수 당신의 말씀 때문에.

 

“빚이 어둠 가운데 들어오매 어둠이 빛을 싫어하더라.”

 

복음, 그것은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기쁜 소식이요,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며 심판이다. 하느님도 이 원리를 뒤집어 놓을 수 없다. 그래서 예수님 고작 하신 말씀이, “나라고 하는 돌멩이가 걸림돌이 되지 않는 사람 곧 나에게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복되다”였다.

 

      류연복 판화

 

예수님은 불이다. 태워버리는 불이다. 불이 불을 지르러 세상에 오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좋다가 아니다. 관용 또는 사랑이란 말로 어둠을 옹호하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라! 대화라는 말로 불의한 자 곁에 들러리 서는 자가 누구냐?

 

“내가 온 것은 이 세상을 평화롭게 하려 함이 아니다.”

 

분명한 오해의 소지를 보면서도, 이 한 마디가 당신을 미워하는 적들에게 얼마나 좋은 꼬투리가 될 것인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말할 수밖에 없는 예수님의 심정을, 똥물에 빠진 바퀴 눈 같은 썩은 눈으로 역사를 보아, 좋은 게 좋은 것들이 어찌 감히 헤아릴 수 있으랴?

 

아아, 이 불이 이미 타올랐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 최후의 불씨를 던지면서 아픔을 뼈에 새기는 이 말씀이 귀에 거슬리는 자 있거든 보리떡, 물고기 얻어먹은 것으로 만족하고 돌아서들 가거라.

 

<기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나라 속담에

똥이 무서워서 피하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 때문에 속상할 적이 참 많습니다.

똥을 왜 피해야 하는지요?

그게 길 복판에 있으면 마땅히

치워버려야 할 터인데 이 백성은

그저 눈길 돌리고 피하는 걸 상책으로 여겼거든요.

주님,

똑바로 보게 하소서.

더불어 싸울 우리의 적을 똑바로 보게 하소서.

 

이현주/동화작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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