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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 질문의 값

by 한종호 2017. 12. 7.

이신정의 읽고 쓰는 공동체(1)


시작하며, 불씨 - 질문의 값


넌 왜 쓰레기를 그리니? 이런 걸 그리는 애는 첨 봤다. 중학교 입학하고 처음 맞는 야외 미술수업시간이었다. 운동장에 나가 풍경화를 그리라는 말에 난 건물 뒤꼍에 버려진 폐자재더미를 그렸다. 아이들은 구름과 나무와 잔디와 벤치를 그렸다. 나는 내가 그리고 있는 게 쓰레기라고 불릴 줄은 몰랐다. 내 눈에는 그저 버려졌을 뿐 여전히 나무이고 플라스틱이고 쇠붙이인, 그러므로 저마다 나름의 표정을 갖고 달리 살 길을 찾고 있는 무언가로 보였으니까.


학기 초 새로 부임해 온 미술선생은 이름이 꽤 알려진 화가라고 했다. 각이 많이 진 금테안경에 체크무늬가 들어 간 더블버튼 양복을 제복처럼 빼입고 다니는 남자였다. 두 차례에 걸친 풍경화 수업이 끝나자 그는 쓰레기를 그린 내 그림을 나중에 있을 학교 대항 사생화 공모전에 내 보자고 했다. 완성된 그림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내 얼굴과 그림을 번갈아 보는 눈빛에서 봄볕 같은 온기가 느껴졌다.


그림을 계속 그리렴. 재능이 많아 보이는구나. 어떻게 이걸 이렇게 그릴 생각을 했니? 대단한데! 여기엔 물을 더 많이 써야 해. 물감만 많이 쓴다고 좋은 색이 나오는 건 아니란다. 눈에 보이는 거하고 똑같은 색을 쓸 필요는 없어. 네가 상상한 색을 쓰면 돼. 그림은 다 상상이거든. 네 머릿속에 든 상상이 실제로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하단다. 그날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미술시간이면 교실에 무지개가 뜬 듯 가슴이 뛰었다. 교탁에 꽃병과 사과를 놓고 정물화를 그리든, 열두 가지 포스터칼라로 질서를 지키고 불조심을 하자는 포스터를 그리든, 그는 꼬박꼬박 내 자리로 다가와 심장을 달구는 격려와 찬사와 생각지도 못했던 가르침의 말들을 시(詩)처럼 들려주곤 했다. 


가만히 내딛는 구두소리와 함께 그가 나를 향해, 아니 정확히는 내 스케치북을 향해 한 발 두 발 다가올라치면 쥐고 있던 붓에 날개가 달린 듯 도화지 위에서 황홀한 춤사위가 벌어지곤 했다. 내 어깨 옆에 비껴선 그가 그윽한 기대와 환영의 눈길로 선을 그리면 나는 그 선을 따라 색을 칠했고, 내가 색칠을 마치면 그가 기다렸다는 듯 꿈결처럼 속삭이곤 했다. 좋아. 그거야. 남들 보는 것과는 다른 걸 봐야지. 다른 걸 봐야 다른 세상이 생기지. 스케치북에서 눈을 들어 바라본 창밖 세상은 이미 다른 세상이었다.


달포쯤 지났을 무렵 복도에서 마주친 그가 나를 미술실로 불러들였다. 쓰레기를 그린 그림이 특선으로 뽑혔다고 했다. 스승과 제자의 입이 동시에 벌어졌다. 그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입상한 그림은 복도에 전시할 거야. 그러려면 표구를 해야 해. 다음 주까지 준비를 마쳐야 하니까, 가서 어머니께 말씀드리렴. 그가 아무렇지 않게 말해 준 표구 값은 상상 이상으로 비쌌다. 언제나 아프고 가난한 엄마가 떠올랐다. 선생님, 표구는 그냥 제가 알아서 해 오면 안 될까요? 아, 그럴 수 있겠니? 예. 해 볼게요.



입학할 때 이모와 큰 아버지에게서 받은 용돈이 있었다. 안 쓰고 모아 둔 거였다. 난 학교 뒷문에서부터 그림을 둘둘 말아 든 채 걷고, 버스 타고, 다시 한참을 걸어 평소 보아 두었던 집 근처 시장 거울가게를 찾아갔다. 늦은 점심인 듯 자장면에 코를 박고 있던 주인아저씨는 그림은 보지도 않은 채 다음날까지 알아서 테두리를 해주겠다고 했다. 테두리 하는 값은 내가 갖고 있는 돈에 맞춰 주겠다고 했다. 난 아저씨에게 갖고 있던 돈을 다 내놓았다.


어두운 미술실에서 작은 창을 등진 채 앉아 있던 미술선생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여백도 없이 두께도 맞지 않게, 그림을 얇은 유리로 덮고 주변을 그냥 가느다란 졸대로 둘러친 모양새를 보곤 할 말을 잃은 듯했다. 열 네 살이었던 나는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벌 받을 일을 기다리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한쪽 벽에는 표구 값을 낸 아이들 그림 두 점이 두툼하고 화려하게 조각된 금색 액자 속에 들어 앉아 있었다. 하나는 입선이고 다른 하나는 가작이었다. 넌, 그림을 계속 그릴 순 없겠구나. 네? 그림을 그리는 데는 재능 말고도 필요한 게 많거든.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내가 아무리 애써 멋진 구도를 잡고, 물감보다 물을 더 많이 써서 정성껏 붓질을 하고, 쓰레기보다 더 이상한 소재로 그림을 그려도 그는 더 이상 내 자리에 오지 않았다. 이름도 불러주지 않았다. 복도에서 마주쳐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이유를 알고 싶었으나 물을 수가 없었다. 나는 죄목도 모른 채 끝나지 않는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답을 구할 수 없는 질문이 시작되었다. 잘 죽지도 않고 가슴을 파고들며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는, 가시 같기도 하고 잡초 같기도 하고 통증 같기도 한 질문이었다. 뱉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질문이었다. ‘왜 그림보다 테두리가 중요한가. 표구 값을 낼 수 없는 아이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게 정말 사실인가.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주변에 가난한 아이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하면 난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나.’


그때 그 선생의 나이만큼 많은 봄을 보내고 다시 맞게 된 어느 해 초봄, 신문 한 귀퉁이에서 그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었다. 얼굴은 세월을 숨길 수 없었으나 눈빛만큼은 내 얼굴과 그림을 번갈아 바라보던 그 봄날 그대로였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난 그림을 그려도 둘 곳이 없었어요. 밥상에서 그림을 그리고 책상이나 장롱 위에 눕혀두곤 했죠. 가난한 사람이 예술을 하는 건 평생 고통이에요. 내가 그림 세워둘 공간을 마련한 건 나이 오십이 넘어서였습니다. 지금도 누가 나처럼 살겠다고 나선다면 난 끝까지 말릴 겁니다.


그가 입고 다니던 체크무늬 양복이 제복처럼, 아니 교복처럼 보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갈아입을 옷이 없었던 것처럼 그에겐 아마도 갈아입을 세상이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제자에게 가르친 다른 세상을 정작 자신의 눈으로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그가 본의 아니게 심어준 질문 덕분에 그가 포기한 세상 속에서도 다른 세상을 꿈결처럼 찾아다녔다. 보이진 않아도 어딘가 있을 거라 믿었다. 익숙한 풍경이 끊기면서 세상이 달라 보이던 그날, 쓰레기가 특선 작이 되던 그 전환의 순간, 변두리 시장골목에서 둘러쳐 준 테두리 때문에 붓이 꺾이고 그림이 중단됐던 그 교실, 그 단절과 상실의 복도에서, 생각지 못했던 다른 말과 다른 생각이 태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혹은 뒤집어 말하자면 그건, 통증 같은 질문 하나를 얻기 위해 내가 갖고 있던 돈을 다 바쳤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예기치 못한 하나를 얻기 위해 가진 걸 모두 거는 일, 그 어리석음이야말로 내가 쉬지 않고 실패하고 넘어지면서도 또 다른 실패를 향해 일어설 수 있게 해 준 힘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은 내가 유일하게 긍지로 삼는 나의 어리석음에 대한 기록이자, 그 어리석음이 추동한 무수한 실패와 그 실패의 경험이 내게 안겨 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고통과 환희에 대한 증언이 될 것이다.


이신정 / 읽고 쓰는 공동체 <행간> 운영자. 한살림교회 전도사로 일하면서 시나리오, 희곡, 소설, 영화에세이 등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계속해 왔다. 쓰는 과정 속에 얻은 자원들로 현재 공동체적 글쓰기를 실험하고 있다. 고독을 전제로 하는 책읽기와 글쓰기가 어떻게 공동체적 규율 속에 수행, 공유, 확산될 수 있는지 스스로 묻고 행하고 답하는 중이다. 부단히 읽고 쓰는 일을 통해 권력 없는 자들의 힘이 해방되고 개방된 공동체적 가치로 전유, 창안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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